“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1절)
오늘의 성경말씀은 하나님께서 장차 열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하시려는 대담한 부름에서 비롯됩니다.
이 1절의 말씀을 간단히 말하자면 무료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일반 밥이 아니라 호화로운 식사입니다. 그것이 누구나 무료로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혀 조건을 두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좀 걱정이 돼요. 왜냐하면 꽤 귀찮은 사람도 올 수 있잖아요?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라든가,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들이라든가, 또 일하지 않는 사람도, 문제를 일으킨 사람도 모두입니다. 목마른 자, 은이 없는 자, 평소 공동체에서 쫓겨난 자들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식사에 초대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잔치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을 전혀 아무에게도 부과하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마시고 싶은 사람, 여기서 먹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오는 것이 좋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만, 유일하게 조건이 있다면, “나는 그 잔치보다 더 다른 곳에 가고 싶은 장소가 있다”고 하는 사람은 그 잔치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들어갈 수 없다기보다 “내가 모르는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초대받고 있는 이곳보다 다른 곳에서 식사를 하고 싶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잔치에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잔치에서 자신을 내쫓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인간 쪽입니다.
여러분, 어느새 우리는 하나님께서 초대하시는 잔치를 스스로 거부하고 스스로 내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어드벤트 둘째 주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셔서 악을 무찌른 하나님의 잔치가 열릴 날을 고대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이때 하나님은 남에게 쫓겨나거나 스스로를 내쫓아버리는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3절)
“저는 그곳에 갈 수 없습니다. 초대받아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좋으니 말을 듣고 들어가라. 나를 따라 여기서 먹고 여기서 마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 라고.
이 말씀을 처음 들은 기원전 6세기 후반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몇 세대 전에 나라가 망해서 바빌론으로 끌려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외국에서 사는 동안 더 이상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땅으로 돌아가려는 의지를 잃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페르시아 왕국에 의해 바빌론이 쓰러지고 길었던 포로 생활에 해방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50년 가까이 돌아오지 않았던 예루살렘은 이제 고향이라고 하기 어렵고 땅도 완전히 황폐해져 있었습니다. 내 집, 내 땅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이대로 외국에 머무는 것이 차라리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습니다.
애당초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바빌론으로 끌려가지 않은 사람들 대부분은 교양이나 기술을 익히지 않았거나 데려가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던 하류 계급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팠던 자, 장애가 있던 자, 죄인으로 여겨졌던 자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남아 있는 예루살렘으로 하나님께서는 “돌아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한편 바빌론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교양을 가지고 어떤 기술을 익힌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입니다. 예전에는 하류 계급의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 조차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사회에서 내쫓았던 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하나님께서는 초대하고 계십니다. 그곳이 생명을 얻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 초대는 포수 백성들에게 기쁨보다 충격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주 하나님, 저는 어디로 돌아가나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장소는 제가 내쫓고 온 사람들이 있는 곳이 아닙니까? 이제 와서 그곳으로 돌아와 그들과 협력하여 예루살렘을 재건하고 함께 예배하라니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이 그들의 속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8절입니다.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8절)
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외국에서의 삶을 버리고 황폐한 고향으로 돌아와 낯선 사람들과 하나님을 예배하는 길로 나아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남아 있던 자들과 함께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고 다시 예배할 장소를 마련했습니다. 왜 그들이 그런 마음이 되었는지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초대해도 응할 리 없는 인간을 끈질기게 부르고 응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여시는 잔치에서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어. 너는 나에게 용서를 받고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나와 함께 식사를 맛보고 함께 기뻐하며 즐기는 것이라”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응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가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초대하는 하나님과 같은 말씀을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이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요 7:37-3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 11:28)
2주 후에 찾아오는 크리스마스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구세주께서 우리가 사는 곳에, 그것도 쫓겨난 사람들에게 와주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기로 탄생하신 것은 왕궁도, 성전도 아닙니다. 제대로 된 집안조차 아닙니다.
여관은 이제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쫓겨났고, 어쩔 수 없이 묵게 한 가축이 있는 마구간, 쫓겨난 사람들이 몸을 의지하는 곳에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방문한 것은 왕이나 제사장이 아닙니다. 집에도 갈 수 없는, 밤새 양치기를 하던 노숙자들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왕궁에서 태어나셨다면, 또 성전 안에서 태어나셨다면 그들이 그 자리에 초대받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양치기들도 왕을 보러 갈 생각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천사의 초대에 응하고 예수님을 찾아간 것은 그 아기가 “구유에 누워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구유 속에 태어난 아기라면 사양하지 않고 축하하러 갈 수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오라, 주저하지 말고” “내게로 오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시는 부름은 오늘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대답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는 어디까지나 내려오십니다. 이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가다듬고 크리스마스까지 준비를 해 나갑시다.
2023年12月10日 主日礼拝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ルカ(누가복음) 4章 18~19節
〇讃 頌 讃頌歌 39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116 (待降節[2])
〇讃 頌 讃頌歌 105
〇聖書奉読 イザヤ書(이사야) 55章 1~9節
〇説 教 「祝宴に招く神 (잔치에 초대하시는 하나님)」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534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報 告
〇頌 栄 讃頌歌 2
〇祝 祷
【 2023年 12月 10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祝宴に招く神」 イザヤ書 55章 1~9節
「渇きを覚えている者は皆、水のところに来るがよい。銀を持たない者も来るがよい。穀物を求めて、食べよ。来て、銀を払うことなく穀物を求め/価を払うことなく、ぶどう酒と乳を得よ。」(1節)
今日の言葉は、神さまが将来開く祝宴に、人々を招こうとする大胆な呼びかけから始まっています。
この1節の言葉を簡単に言いますと、無料でご飯が食べられると言うことです。しかも普通のご飯ではなく、豪華な食事です。それが誰もが無料で食べられるのです。神さまは全く条件を設けません。
でも、ちょっと心配になります。だって、けっこう厄介な人も来るかもしれないじゃないですか? 路上で生活する人たちとか、精神的に病んでいる人たちとか、また、働いていない者も、問題を起こした者も、厄介払いされる者も、みんなです。渇きを覚えている者、銀を持たない者たち。普段、共同体から締め出されている者たちが、神さまから呼びかけられ、食事に招待されました。
神さまはこの宴会に入るための条件を、全く、誰にも、課していません。ここで飲みたい者、ここで食べたい者は、誰でも来るがよいと呼びかけているわけですが、唯一、条件があるとするなら、「自分はその祝宴よりも、もっと他に行きたい場所がある」という人はその祝宴会場には入れないということです。入れないと言うより、「私の知らない人、私の苦手な人、嫌いな人が招かれているここよりも、別のところで食事がしたい」と主張する人は神さまが用意された祝宴には行かないということです。神さまの宴会から自分を締め出すのは、神さまではなく、人の方なのです。
皆さん、いつの間にか、私たちは神さまが招いている祝宴を自ら拒み、自ら締め出しているのかもしれません。今日はアドヴェント第2週目です。イエスさまが再びこの世に来られ、悪を打ち破った神さまの祝宴が開かれる日を待ち望む時を過ごしておりますが、この時に、神さまは他人に締め出され、あるいは自らを締め出してしまう私たちに、この言葉を与えました。「耳を傾けて聞き、わたしのもとに来るがよい。聞き従って、魂に命を得よ。」(3節)
「私はそこへ行けません。招かれたって入れません。」そう口にするあなたに対し、神さまは言うのです。「いいから言うことを聞いて入りなさい。私に従って、ここで食べ、ここで飲み、永遠の命にあずかりなさい」と。
この言葉を最初に語られた紀元前6世紀後半のイスラエル人は、数世代前に、国を滅ぼされ、バビロンへ連れて行かれた人たちでした。彼らは長いこと外国で暮らしている間に、もう自分の国には帰れないと諦め、神さまから与えられた土地に戻ろうという意志を失っていました。
そんな中、ペルシャ王国によってバビロンが倒され、長かった囚われの生活に、解放が訪れます。ところが、50年近くも帰っていなかったエルサレムは、もはや故郷とは言い難く、土地もすっかり荒れ果てていました。自分の家、自分の土地が残っているかも分からない故郷へ帰るより、このまま外国に留まった方が、安心して暮らしていけると多くの人が考えました。
そもそもエルサレムに残っている、バビロンへ連れて行かれなかった人間の大半は、教養や技術を身につけていない、連れて行っても役に立たないと思われた、下流階級の人間でした。病気だった者、障害のあった者、罪人と見なされていた者。そのような人たちが残っているエルサレムへ、神さまは「帰っておいで」と言われるのです。
一方、バビロンへ連れて行かれたのは、教養を持ち、何らかの技術を身につけた、中流階級以上の者たちです。かつては、下流階級の人たちと一緒に食事をするなんて、考えられないことでした。自分たちが社会から締め出してきた者が待っている場所へと、神さまは招いている。そこが、命を得る場所だと言われている。この招きは、捕囚の民に対し、喜びよりも衝撃をもたらすものでした。
「神さま、私はどこへ帰るのです? あなたが言われる場所は、私が締め出してきた人たちのいるところではないですか? 今さらそこへ戻り、彼らと協力してエルサレムを再建し、一緒に礼拝するようになるなんて、本気でお考えですか?」これが彼らの本音だったのです。
神さまは、そんな彼らにこう言われました。8節です。「わたしの思いは、あなたたちの思いと異なり/わたしの道はあなたたちの道と異なる」。
この神さまの御言葉に従い、外国での暮らしを捨てて、荒廃した故郷へ戻り、見知らぬ人たちと神さまを礼拝する道に進んだ者たちがいました。彼らはエルサレムに帰国し、残っていた者たちと共に、神殿と城壁を再建し、もう一度礼拝する場所を整えました。なぜ、彼らがその気になったのか、正直私には分かりません。
私たち人間の思いでは、ありえないことが起こりました。神さまは、招いても応えるはずのない人間を、粘り強く呼び続け、応えさせてしまうのです。
神さまの開く祝宴で、「私はあなたを待っている。あなたは私に赦されて、私と同じテーブルにつき、私と共に食事を味わい、共に喜び楽しむのだ」と、そう言って、神さまの招きに応えない人々を、応える人へ変えていったのです。
全ての人を招く神さまと同じ言葉を、イエスさまも語っておられます。「渇いている人はだれでも、わたしのところに来て飲みなさい。わたしを信じる者は、聖書に書いてあるとおり、その人のうちから生きた水が川となって流れ出るようになる。」(ヨハネ7:37-38) 「疲れた者、重荷を負うている者は、だれでもわたしのもとに来なさい。休ませてあげよう。」(マタイ11:28)
2週間後に訪れるクリスマスは、まさに、神の子である救い主が、私たちの住むところに、それも、締め出され、追い出された人たちのもとへ来てくださった出来事でした。イエスさまが赤ん坊として誕生したのは、王宮でも、神殿でもありません。まともな家の中でさえありません。
宿屋はもう、お客さんでいっぱいだからという理由で締め出され、やむなく泊めさせてもらった家畜小屋、追い出された人たちが身を寄せるところでイエスさまは生まれました。イエスさまを最初に訪問したのは、王や祭司ではありません。家に帰ることのできない、夜通し羊の番をしていた野宿者たちです。
もしも、イエスさまが王宮で生まれたら、神殿の中で生まれたら、彼らがその場に招かれることはなかったでしょう。羊飼いたち自身も、王を見に行こうとは思えなかったでしょう。彼らが天使の招きに答え、イエスさまのもとを訪れたのは、その赤ん坊が「飼い葉桶の中に寝ている」と知らされたからです。飼い葉桶の中に生まれた赤子なら、遠慮せず、祝いに行くことができました。
「誰でも来なさい、ためらわずに」「わたしのもとに来るがよい。」神さまが、あなたを招く呼びかけは、今日も繰り返されています。あなたが答えられるように、この方はどこまでも降りて来ます。この方と共に歩むため、耳を澄ませ、心を整え、クリスマスまでの間、準備をしていきましょう。
【2023년 12월 10일 주일예배(요약판)】
“잔치에 초대하시는 하나님” 이사야 55장 1~9절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1절)
오늘의 성경말씀은 하나님께서 장차 열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하시려는 대담한 부름에서 비롯됩니다.
이 1절의 말씀을 간단히 말하자면 무료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일반 밥이 아니라 호화로운 식사입니다. 그것이 누구나 무료로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혀 조건을 두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좀 걱정이 돼요. 왜냐하면 꽤 귀찮은 사람도 올 수 있잖아요?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라든가,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들이라든가, 또 일하지 않는 사람도, 문제를 일으킨 사람도 모두입니다. 목마른 자, 은이 없는 자, 평소 공동체에서 쫓겨난 자들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식사에 초대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잔치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을 전혀 아무에게도 부과하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마시고 싶은 사람, 여기서 먹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오는 것이 좋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만, 유일하게 조건이 있다면, “나는 그 잔치보다 더 다른 곳에 가고 싶은 장소가 있다”고 하는 사람은 그 잔치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들어갈 수 없다기보다 “내가 모르는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초대받고 있는 이곳보다 다른 곳에서 식사를 하고 싶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잔치에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잔치에서 자신을 내쫓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인간 쪽입니다.
여러분, 어느새 우리는 하나님께서 초대하시는 잔치를 스스로 거부하고 스스로 내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어드벤트 둘째 주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셔서 악을 무찌른 하나님의 잔치가 열릴 날을 고대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이때 하나님은 남에게 쫓겨나거나 스스로를 내쫓아버리는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3절)
“저는 그곳에 갈 수 없습니다. 초대받아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좋으니 말을 듣고 들어가라. 나를 따라 여기서 먹고 여기서 마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 라고.
이 말씀을 처음 들은 기원전 6세기 후반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몇 세대 전에 나라가 망해서 바빌론으로 끌려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외국에서 사는 동안 더 이상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땅으로 돌아가려는 의지를 잃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페르시아 왕국에 의해 바빌론이 쓰러지고 길었던 포로 생활에 해방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50년 가까이 돌아오지 않았던 예루살렘은 이제 고향이라고 하기 어렵고 땅도 완전히 황폐해져 있었습니다. 내 집, 내 땅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이대로 외국에 머무는 것이 차라리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습니다.
애당초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바빌론으로 끌려가지 않은 사람들 대부분은 교양이나 기술을 익히지 않았거나 데려가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던 하류 계급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팠던 자, 장애가 있던 자, 죄인으로 여겨졌던 자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남아 있는 예루살렘으로 하나님께서는 “돌아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한편 바빌론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교양을 가지고 어떤 기술을 익힌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입니다. 예전에는 하류 계급의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 조차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사회에서 내쫓았던 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하나님께서는 초대하고 계십니다. 그곳이 생명을 얻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 초대는 포수 백성들에게 기쁨보다 충격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주 하나님, 저는 어디로 돌아가나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장소는 제가 내쫓고 온 사람들이 있는 곳이 아닙니까? 이제 와서 그곳으로 돌아와 그들과 협력하여 예루살렘을 재건하고 함께 예배하라니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이 그들의 속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8절입니다.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8절)
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외국에서의 삶을 버리고 황폐한 고향으로 돌아와 낯선 사람들과 하나님을 예배하는 길로 나아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남아 있던 자들과 함께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고 다시 예배할 장소를 마련했습니다. 왜 그들이 그런 마음이 되었는지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초대해도 응할 리 없는 인간을 끈질기게 부르고 응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여시는 잔치에서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어. 너는 나에게 용서를 받고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나와 함께 식사를 맛보고 함께 기뻐하며 즐기는 것이라”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응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가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초대하는 하나님과 같은 말씀을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이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요 7:37-3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 11:28)
2주 후에 찾아오는 크리스마스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구세주께서 우리가 사는 곳에, 그것도 쫓겨난 사람들에게 와주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기로 탄생하신 것은 왕궁도, 성전도 아닙니다. 제대로 된 집안조차 아닙니다.
여관은 이제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쫓겨났고, 어쩔 수 없이 묵게 한 가축이 있는 마구간, 쫓겨난 사람들이 몸을 의지하는 곳에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방문한 것은 왕이나 제사장이 아닙니다. 집에도 갈 수 없는, 밤새 양치기를 하던 노숙자들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왕궁에서 태어나셨다면, 또 성전 안에서 태어나셨다면 그들이 그 자리에 초대받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양치기들도 왕을 보러 갈 생각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천사의 초대에 응하고 예수님을 찾아간 것은 그 아기가 “구유에 누워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구유 속에 태어난 아기라면 사양하지 않고 축하하러 갈 수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오라, 주저하지 말고” “내게로 오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시는 부름은 오늘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대답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는 어디까지나 내려오십니다. 이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가다듬고 크리스마스까지 준비를 해 나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