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13절에 있는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계획을 세워서 전진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이것을 “악한 것”(16절)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계획을 세워 장래 설계를 합니다. 큰 묙표나 아주 먼 장래의 일이 아니라 목전에 일이라도 우리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니까 인생에 계획을 세워 장래 설계를 하는 것은 결코 “악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야고보는 “악한 것”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실은 인생에 계획을 세워 장래를 설계하는 것 자체는 “악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 야고보는 우리가 계획을 세워 장래를 설계하는 인생의 근본 문제, 인생의 근저에 있는 “생명”의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생명”에 대한 우리의 의식이나 태도가 근본적으로 이상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생명에 대해서 “허탄한 자랑”(16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4절에서 야고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14절)
우리의 생명은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 건강하게 살아 있어도 내일 자신의 생명을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생명은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생명을 컨트롤 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그 수명을 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치 “내일”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생명이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것 같이 착각하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 있다고 모르는 사이에 “허탄한 자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 13절 이하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한 부자의 비유”가 쓰여 있습니다. 어떤 부자가 자신의 장래 설계를 위해 필요한 많은 재산을 곳간에 쌓아 두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 12:20)
부자는 자신의 계획에 빠져 그것을 계획대로 한 것을 기뻐한 나머지 하나님의 계획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에 대해 자신의 계획을 세우는 것과 동시에 우리의 생명을 손아귀에 두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님의 “뜻”(15절)을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내일의 일은 모르고 우리가 노력해도 헛수고로 끝날지도 모르니까 인생에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게 좋다, 장래 설계를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15절입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15절)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 목표를 가지고 계획을 세워 장래를 설계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단 그 때, “주님의 뜻”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하여 맡겨 따르는 것은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전부 다 맡겨서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과 노력이 미치는 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생의 근본에 “주님의 뜻이라면 살기도 한다”는 신앙, 자신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계획에 “주님의 뜻”에 맡기는 자세가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하나님, 맡기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맡기는 곳에 마음의 평안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일의 일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두려움과 불안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만약 우리가 “당신의 수명이 100일 남았다”라고 듣게 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두려움과 불안으로 절망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손아귀에 넣으시는 하나님을 믿고 반드시 좋게 해 주신다고 “주님의 뜻”을 신뢰하여 맡기는 마음의 평안이 필요한 것입니다.
남은 수명이 100일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것도 하고 싶다, 저것도 하고 싶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아마 생각대로 못하고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을 담담히 보내는 게 아닐까요? 그러나 일상과 변하지 않는 같은 것을 하고 있어도 또 일을 하는 것도, 가족과 지내는 것도, 식사하는 것도, 산책하는 것도, 잠깐 낮잠을 자는 것도 하나 하나가 아주 아끼고 소중한 시간으로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이란 본래 하루 하루가 그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소중함을 잊고 지낼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한다”는 신앙은 이 소중함을 생각내서 하루 하루를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 있다는 것을 감사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살아 있다는 허탄한 자랑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살게 해 주신다는 감사의 마음을 되찾는 것입니다.
2023年9月17日 主日礼拝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ペトロの手紙一(베드로전서) 1章 23~25節
〇讃 頌 讃頌歌 25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53 (詩編121編)
〇讃 頌 讃頌歌 390
〇聖書奉読 ヤコブの手紙(야고보서) 4章 13~17節
〇説 教 「明日のことは分からないからこそ(내일 일은 알지 못하니까)」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489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報 告
〇頌 栄 讃頌歌 2
〇祝 祷
【 2023年 9月 17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明日のことは分からないからこそ」 ヤコブの手紙4章11~12節
13節にある「今日か明日、これこれの町へ行って一年間滞在し、商売をして金もうけをしよう」(13節)と言う人たちは、自分の人生を設計し、計画を立てて進もうとしている人たちです。でも、ヤコブはこれを「悪いこと」(16節)だと非難しています。
これは一体、どう言うことでしょうか?
私たちは、誰でも、自分の人生に計画を立て、将来設計をします。別に大きな目標とかずっと遠い将来のことでなくて、目先のことであっても、私たちは計画を立てます。
ですから、人生に計画を立て、将来設計をすることは、決して「悪いこと」とは思われません。それなのに、なぜヤコブは「悪いこと」だと言うのでしょうか?
実は、人生に計画を立て、将来を設計すること自体は「悪いこと」ではないのです。そうではなくて、ヤコブは、私たちが計画を立て、将来を設計する人生の根本の問題、人生の根底にある“命”の問題を取り上げているのです。その“命”に対する意識、態度が、根本的におかしい、ズレていると言っているのです。命に対して「誇り高ぶって」(16節)いるのです。
14節で、ヤコブはこう言います。「あなたがたには自分の命がどうなるか、明日のことは分からないのです。あなたがたは、わずかの間現れて、やがて消えて行く霧にすぎません」(14節)。
私たちの命は、明日どうなるか分からないのです。今日、元気そうに生きていて、こうして顔を合わせていても、明日、自分の命は失われているかも知れません。私たちの命は、私たちの手の中にはないのです。自分の力で自分の命をコントロールし、自分の意思でその寿命を定めることはできません。それは、“神さま”がなさることです。
それなのに、私たちは、まるで「明日」があることを当然のように考え、命が自分の手の中にあるように錯覚し、自分の力で生きていると、知らず知らず「誇り高ぶっている」(16節)ようなところがないでしょうか。
ルカによる福音書12章13節以下に、イエスさまがなさった〈愚かな金持ちのたとえ〉記されています。ある金持ちが、自分の将来設計のために必要なたくさんの富みを倉におさめるという話です。しかし、神さまが夢に現れてその金持ちにく言うのです。「愚かな者よ、今夜、お前の命は取り上げられる。お前が用意した物は、いったいだれのものになるのか」(ルカ12:20)。
金持ちは、自分の計画にばかり夢中になって、それが計画通りに行ったことを喜ぶあまり、神さまのご計画を忘れていたのです。私たちの人生には、自分の計画を立てると共に、私たちの命をその手に治めておられる神さまのご計画を、神さまの「御心」(15節)に思いを寄せることが必要なのだと思います。
もちろん、明日のことは分からないから、「お前が用意した物は、いったいだれのものになるのか」分からないから、無駄に終わる、徒労に終わるかもしれないから、人生に計画など立てない方が良い。将来設計などしない方が良いと言っ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
ヤコブは、このように教えます。15節です。「むしろ、あなたがたは『主の御心であれば、生き永らえて、あのことやこのことをしよう』と言うべきです」(15節)。
私たちは、自分の人生に目標を持ち、計画を立て、将来を設計しながら、生き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ただ、その時に、「主の御心」を考えなさいということです。
「主の御心」、神さまのご計画を思い、ゆだねて従うということは、神さまに自分の人生を丸投げして、自分は何もしないということではありません。私たちは自分の人生に対して、自分の意思と努力の及ぶ限り、責任を負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けれども、そのような人生の根本に、「主の御心であれば、生き永らえて」という信仰、自分の力の及ばないところがあることをわきまえて、究極的には自分の人生を神さまのご計画に、「主の御心」におゆだねする姿勢が、私たちには必要なのです。“神さま、お任せします。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とおゆだねするところに、心の平安が生まれて来るのです。
明日のことは分からない。そう考えると、恐れと不安が生まれるかも知れません。もし私たちが、“あなたの命はあと100日です”と言われたら、どうするでしょう? 恐れと不安に絶望してしまうかも知れません。けれども、それが私たちの命なのです。だからこそ、私たちは、私たちの命をその手に治めておられる神さまを信じ、必ず最善にしてくださると「主の御心」を信頼して、おゆだねする心の平安が必要なのです。
あと100日の命だったら‥‥‥。皆さんはどうしますか? あれもしたい、これもしたいと思うかもしれません。でも、多くの人は、恐らく思っているほどはできず、やはりほとんど日常と変わらない生活を淡々と送ることになる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けれども、日常と変わらない、同じことをしていても、仕事をすることも、家族と過ごすことも、食事をすることも、散歩をすることも、ちょっと昼寝をすることも、一つ一つがとても貴重な、愛おしい時間に感じられるに違いありません。
けれども、命とは本来、一日一日がそのように貴重なものなのです。けれども、私たちは、その貴重さを忘れて過ごしているところがあります。だから、「主の御心であれば、生き永らえて」という信仰は、この貴重さを思い出して、一日一日に感謝して、神の恵みによって“生かされてある”ことを感謝して生きる心にほかなりません。自分の力で“生きている”という誇り高ぶりから、神の恵みによって“生かされてある”という感謝の心を取り戻すのです。
皆さん、私たちは今日という一日を、神さまによって、生かされて生きております。その恵みを感謝し、神さまにおゆだねして、誇り高ぶらず謙虚に歩ませていただきましょう。
【2023년 9월 17일 주일예배(요약판)】
“내일 일은 알지 못하니까” 여고보서 4장 13~17절
본문 13절에 있는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계획을 세워서 전진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이것을 “악한 것”(16절)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계획을 세워 장래 설계를 합니다. 큰 묙표나 아주 먼 장래의 일이 아니라 목전에 일이라도 우리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니까 인생에 계획을 세워 장래 설계를 하는 것은 결코 “악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야고보는 “악한 것”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실은 인생에 계획을 세워 장래를 설계하는 것 자체는 “악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 야고보는 우리가 계획을 세워 장래를 설계하는 인생의 근본 문제, 인생의 근저에 있는 “생명”의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생명”에 대한 우리의 의식이나 태도가 근본적으로 이상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생명에 대해서 “허탄한 자랑”(16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4절에서 야고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14절)
우리의 생명은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 건강하게 살아 있어도 내일 자신의 생명을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생명은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생명을 컨트롤 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그 수명을 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치 “내일”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생명이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것 같이 착각하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 있다고 모르는 사이에 “허탄한 자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 13절 이하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한 부자의 비유”가 쓰여 있습니다. 어떤 부자가 자신의 장래 설계를 위해 필요한 많은 재산을 곳간에 쌓아 두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 12:20)
부자는 자신의 계획에 빠져 그것을 계획대로 한 것을 기뻐한 나머지 하나님의 계획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에 대해 자신의 계획을 세우는 것과 동시에 우리의 생명을 손아귀에 두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님의 “뜻”(15절)을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내일의 일은 모르고 우리가 노력해도 헛수고로 끝날지도 모르니까 인생에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게 좋다, 장래 설계를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15절입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15절)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 목표를 가지고 계획을 세워 장래를 설계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단 그 때, “주님의 뜻”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하여 맡겨 따르는 것은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전부 다 맡겨서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과 노력이 미치는 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생의 근본에 “주님의 뜻이라면 살기도 한다”는 신앙, 자신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계획에 “주님의 뜻”에 맡기는 자세가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하나님, 맡기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맡기는 곳에 마음의 평안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일의 일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두려움과 불안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만약 우리가 “당신의 수명이 100일 남았다”라고 듣게 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두려움과 불안으로 절망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손아귀에 넣으시는 하나님을 믿고 반드시 좋게 해 주신다고 “주님의 뜻”을 신뢰하여 맡기는 마음의 평안이 필요한 것입니다.
남은 수명이 100일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것도 하고 싶다, 저것도 하고 싶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아마 생각대로 못하고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을 담담히 보내는 게 아닐까요? 그러나 일상과 변하지 않는 같은 것을 하고 있어도 또 일을 하는 것도, 가족과 지내는 것도, 식사하는 것도, 산책하는 것도, 잠깐 낮잠을 자는 것도 하나 하나가 아주 아끼고 소중한 시간으로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이란 본래 하루 하루가 그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소중함을 잊고 지낼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한다”는 신앙은 이 소중함을 생각내서 하루 하루를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 있다는 것을 감사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살아 있다는 허탄한 자랑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살게 해 주신다는 감사의 마음을 되찾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