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11절)
사람을 비방하고 비난하는 자는 “서로 사랑하라”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라고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에 어긋나며 그렇기는커녕 그 가르치심이 잘못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야고보는 말합니다.
우리는 남을 비방하는 이야기의 꽃을 피울 때가 있습니다만, 우리는 다시 한 번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고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신앙으로 사람을 판단할 때입니다. 감정적인 비방과는 좀 다릅니다. 우리에게는 신앙이 있으니까 신앙이 있는 탓으로 그 신앙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맙니다. 성경으로, 율법으로 사람을 심판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율법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서로 사랑하라”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라는 가르치심을 따르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성경을 읽고 자기 방식의 성경 이해, 자기 방식의 신앙으로 사람을 심판하고 마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것은 자기 방식 즉 자기 중심적인 신앙이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는 신앙적이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올바른 것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따르고 있다는 마음이 있으니까 너무 번거롭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있는 “음행중에 잡혀온 여성”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여성이 음행중에 잡혀서 예수님 앞에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창녀였을지도 모릅니다. 율법(십계명)에는 “간음하지 말라”(출 20:14)고 확실하게 정해지고 있습니다. 율법학자나 바리새인들의 신앙심이 두터운 사람들은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께 말하겠나이까”(요 8:4-5) 라고 예수님에게 대답을 재촉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신명기 22장 22절 이하에 쓰여 있으니까 율법으로 볼 때 잘못이 없습니다. 올바릅니다.
좀처럼 대답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에게 그들은 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
사람을 비방하고 심판하고자 하는 사람이 곧잘 잊는 것은 그렇게 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사람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남에게 엄하고 자신에게 무른 우리들, 자기의 일은 덮어놓고 남의 일은 비난하기 쉬운 우리 자신을 돌이켜보고 회개 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성경 말씀을 들어도 “이것은 자기에게는 상관없다”고 생각하거나 “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성경 앞에 서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걷거 있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한 마디는 사람들을 문득 제정신이 들게 하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 앞에 서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게 하셨습니다. “성경의 많은 말씀에 비추어 자기에게 죄가 없느냐?”고. 행함이나 말로서 표면적으로 나온 죄 뿐이 아닙니다.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말씀을 어겨 죄의 마음을 품은 적이 없느냐? 그것을 예수님의 한 마디로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물음받았습니다.
한 사람 나가고 두 사람 나가고, 결국 모든 사람이 그 차리를 나가 벼렸습니다. 누구나 돌로 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을 비방하고 심판하고자 하는 사람이 곧잘 잊는 것은 자가도 하나님께로부터 비방받고 심판을 받아야 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도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점에 사람들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간 후에 예수님께서는 이 여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8:11)
오늘의 성경 말씀에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12절) 라고 있었습니다. 이 “한 분”이란 물론 아버지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따라 이 세상에 오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심판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원하기도 하시고 멸하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여성을 심판하여 멸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마음은 올바르게 심판하여 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새롷게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죄가 사라져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 죄의 괴로움을 예수님 자신이 짊어지셨습니다. 우리를 속죄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 위에서 바치셨습니다. 목숨을 건 사랑을 기리켜 주셨습니다. 사랑이란 사람의 죄를 져서 사는 것이며 죽는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지도 모릅니다.
율법학자나 바리새인들은 음행의 여성을 용서하신 예수님을 율법으로 심판하고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우리도 자기의 시점으로 사람을 비방합니다. 신앙으로 이웃을 심판합니다. 그렇다면 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우리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십자가는 우리 죄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십자가는 하나님의 목숨을 건 사랑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죄에 이기셨으니까 우리는 심판받지 않고 용서받은 것입니다. 미숙한 우리가 죄와 잘못을 반복해도 하나님께서는 몇번이나 일어서게 해 주시고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시작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서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자기자신을 돌이켜보시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정말로 감사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 때, 주님의 용서의 말씀, 사랑의 말씀이 우리에게 힘이 되고 우리를 세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됩니다.
2023年9月10日 主日礼拝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コロサイの信徒への手紙(골로새서) 2章 6~7節
〇讃 頌 讃頌歌 26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51 (詩編118編)
〇讃 頌 讃頌歌 278
〇聖書奉読 ヤコブの手紙(야고보서) 4章 11~12節
〇説 教 「裁いてはならない(심판하지 말라)」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310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報 告
〇頌 栄 讃頌歌 2
〇祝 祷
【 2023年 9月 10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裁いてはならない」ヤコブの手紙4章11~12節
「兄弟たち、悪口を言い合ってはなりません。兄弟の悪口を言ったり、自分の兄弟を裁いたりする者は、律法の悪口を言い、律法を裁くことになります」(11節)。
人の悪口を言い、更に人を非難する者は、「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隣人を自分のように愛しなさい」と教えられたイエスさまの御言葉に反し、それどころか、その教えはまちがっていると裁くことになるとヤコブは言います。
私たちは、人の悪口で盛り上がってしまうということがありますが、もう一度私たちは、自分自身を省みて、神さまの前に深く悔い改める必要があります。
特に、私たちが気をつけなければならないのは、自分の信仰をもって人を裁くときです。感情的な悪口とはちょっと違います。私たちには信仰がありますから、信仰があるばっかりに、その信仰でもって人を判断してしまいます。聖書によって、律法によって、人を裁いてしまいがちだということです。
皆さん、イエスさまが律法の中で最も重要だと言われた「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隣人を自分のように愛しなさい」という教えに従わず、自分流に聖書を読んで、自分流の聖書理解、自分流の信仰で人を裁いてしまうのです。しかも、それは自分流、つまり自己中心的な信仰なのですが、そのことに気づかず、自分は信仰的だ、神さまの目から見て正しいことを言っている、神さまに従っているという思いがありますから、非常に厄介です。
ヨハネによる福音書8章にある〈姦通の現場で捕らえられた女性〉の話があります。一人の女性が姦通の現場で捕らえられ、イエスさまの前に連れて来られました。遊女だったのかも知れません。聖書の律法、十戒には「姦淫してはならない」(出エジプト記20章14節)と、確かに定められています。律法学者やファリサイ派といった信仰熱心な人々は、「先生、この女は姦通しているときに捕まりました。こういう女は石で打ち殺せと、モーセは律法の中で命じています。ところで、あなたはどうお考えになりますか」と、イエスさまに詰め寄りました。確かに、旧約聖書の申命記22章22節以下に、姦通の罪を犯した者は石で打ち殺して悪を取り除け、と記されています。彼らの言うことは、聖書の律法から見て、まちがってはいないのです。正しいのです。
なかなかお答えにならないイエスさまに、彼らは執拗に詰め寄りました。その時、イエスさまはこう言われたのです。
「あなたがたの中で罪を犯したことのない者が、まず、この女に石を投げなさい」(ヨハネ8:7)
人を非難し、裁こうとする者が忘れがちなのは、そうする前に、まず自分自身を見つめ直す、ということです。聖書の御言葉は、人を裁くためではなく、自分を見つめ直し、省みるためにあるのです。人に厳しく、自分に甘い。そういう目で、自分のことは棚に上げて、人のことばかりを非難しがちな私たち自身を見つめ直し、気づかせ、悔い改めさせるためにあるのです。それなのに、私たちは、聖書の御言葉を聞いても、“これは自分には関係ない。自分はできている”と思ったり、“あの人に聞かせてやりたい”と考えたりするのです。そういう時、私たちは聖書の前に立っていない。神さまの御前に歩んでいないのです。
イエスさまの一言は、人々をハッとさせました。人々を神さまの前に立たせました。一人一人を聖書の前に立たせ、まず自分自身を見つめさせました。自分は罪を犯したことはないか? ある、と心当たりを感じた者もいたでしょう。ない、という人も少なからずいたでしょう。しかし、聖書の多くの御言葉に照らして、自分はそれらに背いたことがないと言えるのか? 行いや言葉として形になった罪だけが問題なのではありません。心の中で、神さまに従わず、御言葉に背き、罪の心を抱いたことはないか? そのことを、イエスさまの一言によって、人々は自分自身に問われました。
一人去り、二人去り、ついにすべての人がその場を去って行きました。だれも石を投げ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
人を非難し、裁く者が忘れがちなのは、自分もまた、神さまから非難され、裁かれるような人間なのだ、ということです。自分もまた“罪人”なのだ、ということです。イエスさまはその点に、人々の目を開かせたのです。
すべての人が立ち去った後で、イエスはこの女性に言われました。「わたしもあなたを罪に定めない。行きなさい。これからは、もう罪を犯してはならない。」(ヨハネ8:11)
今日の御言葉の12節に、「律法を定め、裁きを行う方は、おひとりだけです。この方が、救うことも滅ぼすこともおできになるのです」(12節)とあります。この方はもちろん、父なる神さまです。そして、父なる神さまの御心を宿してこの世に遣わされた神の独り子イエス・キリストだけです。裁きはイエスさまが行うのです。キリストが救うことも滅ぼすこともなさるのです。
けれども、イエスさまはこの女性を裁いて、滅ぼしませんでした。なぜなら、父なる神さまの御心は、正しく裁いて滅ぼすことではないからです。愛によって赦し、生かすことだからです。
けれども、人の罪が消えてなくな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その罪の痛みをイエスさまご自身が負われました。私たちの罪の償いとして、ご自分の命を十字架の上でささげられました。命がけの愛を示してくださいました。愛とは、人の罪を負って生きること、死ぬことだと言っても良いかも知れません。
律法学者や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姦通の女性を赦したイエスさまを、聖書の律法によって裁き、十字架に架けました。私たちもまた自分の視点で人を非難します。信仰によって「隣人」を裁きます。ならば、主イエス・キリストを十字架に架けたのは、私たち自身なのです。ですから、十字架は、私たちの罪のしるしなのです。
けれども、同時に十字架は、神さまの命がけの愛のしるしでもあります。神さまの愛は、私たちの罪にまさるからこそ、私たちは裁かれず、赦されるのです。未熟な私たちが、罪・過ちを繰り返しても、神さまは何度となく立ち上がらせ、生かしてくださるのです。やり直させてくださるのです。
皆さん、主イエス・キリストの御言葉の前で、そして、主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の前で、自分を見つめ直し、悔い改め、神さまの大いなる愛に感謝する者とならせていただきましょう。
【2023년 9월 10일 주일예배(요약판)】
“심판하지 말라” 야고보서 4장 11~12절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11절)
사람을 비방하고 비난하는 자는 “서로 사랑하라”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라고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에 어긋나며 그렇기는커녕 그 가르치심이 잘못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야고보는 말합니다.
우리는 남을 비방하는 이야기의 꽃을 피울 때가 있습니다만, 우리는 다시 한 번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고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신앙으로 사람을 판단할 때입니다. 감정적인 비방과는 좀 다릅니다. 우리에게는 신앙이 있으니까 신앙이 있는 탓으로 그 신앙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맙니다. 성경으로, 율법으로 사람을 심판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율법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서로 사랑하라”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라는 가르치심을 따르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성경을 읽고 자기 방식의 성경 이해, 자기 방식의 신앙으로 사람을 심판하고 마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것은 자기 방식 즉 자기 중심적인 신앙이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는 신앙적이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올바른 것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따르고 있다는 마음이 있으니까 너무 번거롭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있는 “음행중에 잡혀온 여성”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여성이 음행중에 잡혀서 예수님 앞에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창녀였을지도 모릅니다. 율법(십계명)에는 “간음하지 말라”(출 20:14)고 확실하게 정해지고 있습니다. 율법학자나 바리새인들의 신앙심이 두터운 사람들은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께 말하겠나이까”(요 8:4-5) 라고 예수님에게 대답을 재촉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신명기 22장 22절 이하에 쓰여 있으니까 율법으로 볼 때 잘못이 없습니다. 올바릅니다.
좀처럼 대답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에게 그들은 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
사람을 비방하고 심판하고자 하는 사람이 곧잘 잊는 것은 그렇게 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사람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남에게 엄하고 자신에게 무른 우리들, 자기의 일은 덮어놓고 남의 일은 비난하기 쉬운 우리 자신을 돌이켜보고 회개 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성경 말씀을 들어도 “이것은 자기에게는 상관없다”고 생각하거나 “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성경 앞에 서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걷거 있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한 마디는 사람들을 문득 제정신이 들게 하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 앞에 서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게 하셨습니다. “성경의 많은 말씀에 비추어 자기에게 죄가 없느냐?”고. 행함이나 말로서 표면적으로 나온 죄 뿐이 아닙니다.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말씀을 어겨 죄의 마음을 품은 적이 없느냐? 그것을 예수님의 한 마디로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물음받았습니다.
한 사람 나가고 두 사람 나가고, 결국 모든 사람이 그 차리를 나가 벼렸습니다. 누구나 돌로 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을 비방하고 심판하고자 하는 사람이 곧잘 잊는 것은 자가도 하나님께로부터 비방받고 심판을 받아야 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도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점에 사람들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간 후에 예수님께서는 이 여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8:11)
오늘의 성경 말씀에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12절) 라고 있었습니다. 이 “한 분”이란 물론 아버지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따라 이 세상에 오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심판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원하기도 하시고 멸하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여성을 심판하여 멸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마음은 올바르게 심판하여 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새롷게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죄가 사라져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 죄의 괴로움을 예수님 자신이 짊어지셨습니다. 우리를 속죄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 위에서 바치셨습니다. 목숨을 건 사랑을 기리켜 주셨습니다. 사랑이란 사람의 죄를 져서 사는 것이며 죽는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지도 모릅니다.
율법학자나 바리새인들은 음행의 여성을 용서하신 예수님을 율법으로 심판하고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우리도 자기의 시점으로 사람을 비방합니다. 신앙으로 이웃을 심판합니다. 그렇다면 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우리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십자가는 우리 죄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십자가는 하나님의 목숨을 건 사랑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죄에 이기셨으니까 우리는 심판받지 않고 용서받은 것입니다. 미숙한 우리가 죄와 잘못을 반복해도 하나님께서는 몇번이나 일어서게 해 주시고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시작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서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자기자신을 돌이켜보시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정말로 감사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 때, 주님의 용서의 말씀, 사랑의 말씀이 우리에게 힘이 되고 우리를 세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