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지혜의 온유함으로 행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온유한 행함이 평화를 실현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이라는 “씨앗”이 사람들의 마음에 뿌려집니다. 그 씨가 싹을 틔우고 성장하고 신앙이라는 열매를 맺는 것은 온유한 행함으로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평화 가운데 씨를 뿌려야 평화 가운데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다툼이나 혼란이 있는 곳에서는 말씀의 씨는 성장하지 않고 신앙의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사람들에게는 “온유한 행함”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온유한 행함을 보여야 합니다. 여러분, 이곳에 초대되어 모여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를 평화의 교제로 만들어내기 위해 “온유한 행함”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평화를 실현하는 온유함이 아니라 “독한 시기와 다툼”을 가졌다면 어떻게 될까요? 거기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16절)로 말미암아 대립이나 다툼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의 일인 것처럼 생각해 버립니다.
여러분, 이건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희 각자의 이야기입니다. 스스로는 별로 느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모든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시기의 불씨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혀를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시기도 능히 길들일 수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시기는 참 무서운 것입니다. 그 근본에 있는 자기 이익을 도모하려는 이기심, 자기가 중심인 마음은 무서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을 만들어내고 사람들 사이에 대립과 다툼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에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15절)이라고 야고보는 말했습니다. 사람을 하나님에게서 떼어내고 하나님의 마음인 사랑과 평화에서 때어내며 혼란과 다툼에 빠뜨리는 요소, 그 원인을 성경은 “귀신”이라는 상징적인 말로 나타냅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교회도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땅 위”에, 이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눈 앞에 있는 사람의 작은 말 한마디나 사소한 행동에만 집중하다 보면 이에 대해 시기하고 화내고 미워하며, 상대를 이기기 위해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며 심지어 자신의 이익만 추구한다면 교회 역시 혼란과 다툼의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기적인 마음에 지배 받지 않고 혼란과 다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즉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깊게 심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위로부터 난 지혜”(17절)를 자신 마음 속에 조금씩 쌓아 가는 것입니다.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17절)
예전에 전도집회 때, 사카키 미네오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기억하고 계실까요? 이 사카키 미네오 씨를 주위 사람들은 미네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인생의 절반(33년간)을 정신 병원에서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이 사람의 신원 보증인이 되어 줄 사람이 있었더라면 그는 사회에 복귀하여 충분히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보증을 서고 받아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는 날까지 정신 병원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어떤 한 목사님이 정기적으로 이 병원을 방문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 ‘당신이 마음 깊이 의지하고 붙잡고 있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라고 목사님이 묻자 미네양은 수줍은 듯이 ‘아니 목사님, 저한테 그런 것은 없어요. 저는 중학교밖에 안 나와서 잘 몰라요. 하지만 애써 세례를 받고 교인이 되었기 때문에 제가 죽을 때에, 아아, 이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였다, 그렇게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생각하면서 미네양이 무심코 성경을 펼쳤을 때 맨 먼저 눈에 들어온 말씀이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라는 말씀이었지요. 바로 이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미네양은 ‘화평하게 하는 자, 평화를 위해 일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이런 병원에 있으면서 무엇을 할 수 있나요?’ 라고 반쯤 농담으로 반문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미네양은 간암에 걸렸고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곧 돌아가셨습니다. 목사님이 병원에 가보니 가장 구석진 방 한쪽에 미네양이 누워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33년간 그곳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가는 길은 가장 친한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치 부자 집 대문 앞에 있었던 나사로를 천사가 가만히 아브라함의 품으로 데려간 것처럼 미네양은 그렇게 조용히 세상을 떠나 갔습니다.
‘내가 죽으면 목사님, 누가 장례를 해 줄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교회로 모셔서 훌륭한 장례식을 해 줄테니까요.’
약속대로 목사님은 시신을 인수하여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그 때 조문하러 찾아온 사람들은 오랜 세월 함께 했던 의사 선생님들이 아니었습니다. 찾아온 사람은 두 명의 청소부 아주머니였습니다. 아주머니들은 미네양의 유해를 앞에 두고 한동안 울고 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네양이 돌아가셔서 외로워졌습니다. 이 사람이 있는 곳은 평화로웠어요’ 라고. ‘평화로웠다고요? 왜요?’ 목사님은 엉겁결에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청소부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사정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에요. 환자끼리 조금 병세가 나빠져 충돌하거나 수습이 어렵게 되면 미네양이 누워있는 침대를 싸우는 환자 사이에 끼어 넣는 거예요. 그러면 고요함이 돌아와요. 이 사람은 자신의 사정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사람을 그 사이에 넣으면 거기에 고요함이 되돌아오거든요. 이 사람이 있는 곳은 늘 평화로웠어요.’ 미네양은 원래 6인실 방에 있었는데, 내내 병실이 바뀌었어요. 갈 때마다 병실이 이리저리 달랐거든요.
아주머니들은 말했습니다. ‘미네양이 여기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어요. 이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였던 거예요.’
‘내가 죽었을 때, 하나님의 자녀였다고 그렇게 말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평화를 위해 일하고 싶어요’ 라고 했던 그의 말이 이루어졌습니다.
미네양의 죽음은 사람이 보기에 비참합니다. 가족도 하나 없이 정신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으니까요, 하지만 청소부 아주머니들은 미네양이 하나님의 자녀였다고 느꼈습니다. 미네양은 바로 화평하게 하는 자였습니다. 화평으로 의의 열매를 심어 거두면서 그 인생을 다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화평하게 하는 자들이란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로 사는 사람들이고 교회의 일치와 평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리가 위로부터의 지혜로 살 때, 우리는 화평하게 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의의 열매를 각자의 생활에서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2023年8月20日 主日礼拝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マタイによる福音書(마태복음) 5章 5, 9節
〇讃 頌 讃頌歌 21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47 (詩編105編)
〇讃 頌 讃頌歌 274
〇聖書奉読 ヤコブの手紙(야고보서) 3章 13~18節
〇説 教 「平和を実現する人たち(화평하게 하는 자들)」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408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報 告
〇頌 栄 讃頌歌 2
〇祝 祷
【 2023年 8月 27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平和を実現する人たち」 ヤコブの手紙 3章 13~18節
今日の御言葉の中で、私たちが「柔和な行い」をするように求められています。なぜなら、柔和な行いが「平和を実現する」からです。
御言葉という“種”が人々の心に蒔かれます。その種が芽を出し、成長して、信仰という実を結ぶのは、柔和な行いによって平和を実現する人が、平和の中で種をまいてこそ、平和のうちに実を結ぶということです。争いや混乱のあるところでは、御言葉の種は成長し、信仰の実を結びません。
だからこそ、教会の人々には「柔和な行い」が求められるのです。柔和な行いを、「立派な生き方によって示す」ことが求められるのです。皆さん、ここに招かれ集まっている私たち一人一人が、教会を平和な交わりとして造り上げていくために、「柔和な行い」を求められているのです。
けれども、そのような平和を実現する柔和さを持たず、「ねたみ深く利己的」であるならば、どうなるでしょう? そこには、「混乱やあらゆる悪い行い」(16節)による対立や争いが生じるのです。
「ねたみ深く利己的」、私たちは自分のこととは思いません。誰かのことのように思ってしまいます。
皆さん、これは誰かの話ではありません。私たち一人一人の話なんです。自分ではあまり感じないかもしれませんが、全ての人の心の底に、ねたみの火種がくすぶっているのです。先週、お話ししました舌を完全に制御できないのと同じように、私たちはねたみの心も制御できないのです。
自分の内に潜むねたみの心は恐ろしいのです。その根本にある、己の利益を図ろうとする利己心、自己中心の心は恐ろしいのです。なぜなら、それは「混乱やあらゆる悪い行い」を生み出し、人と人の間に対立と争いを呼ぶからです。だから、それは「地上のもの、この世のもの、悪魔から出たものです」(15節)と言われるのです。人を神さまから引き離し、神さまの御心である愛と平和から引き離し、混乱と争いに引き込む要素、原因を、聖書は「悪魔」という象徴的な言葉で表すのです。
教会も例外ではありません。教会も人の集まりです。「地上」に、「この世」に属するものです。もし私たちが目の前にいる人の言葉や行いにばかり心を奪われて、ねたんだり、腹を立てたり、憎んだりして、相手を負かそう、自分の意見を通そうとして己の利益を図るならば、教会もまた混乱と争いの場になるのです。
それでは、私たちが利己的な心に支配されず混乱と争いを生み出さないために、すなわち「平和を実現する」ために、私たちはどうしたら良いのでしょうか。
そのためには、神さまを見上げて深く、一つ深呼吸をすることです。そこで、神さまの御心が何であるかを考えるのです。それによって「上から出た知恵」(17節)を、自分の内に少しずつ積み上げ、身に付けていくことです。
17節をご覧下さい。「上から出た知恵は、何よりもまず、純真で、更に、温和で、優しく、従順なものです。憐れみと良い実に満ちています。偏見はなく、偽善的でもありません。」(17節)
以前、伝道集会の時に、サカキ・ミネオという人の話しをしました。覚えていらっしゃるでしょうか。サカキ・ミネオさんは、周りの人からミネヤンと呼ばれていたのですが、人生の半分(33年間)を精神病院で暮らした人です。
ある牧師任が、定期的に病院を訪問し、礼拝の時を持ちました。ある時、「あなたを支え、あなたに宿っている御言葉は何ですか」と、牧師任が尋ねると、ミネヤンは、恥ずかしそうに「いやぁ牧師任、私にはそういうたいそうなものはありません。私は中学校しか出ていないのでよくわかりません。でもせっかく洗礼を受けて教会の仲間になったのだから、私が死ぬ時に、あぁ、この人は神様の子どもだった、そう言ってもらいたいのです。そう思って聖書をパッと開いたら、最初に目に飛び込んできたのが「平和を実現する人は幸いである。その人たちは神の子と呼ばれる」という言葉でした。これこれ、と思いました。だから、私は平和のために働きたいのです。」
牧師任は、「こんな病院にいて、何か出来ますか?」と、半分冗談で答えたそうです。
それからミネヤンは肝臓癌を発症し、病状はどんどん進行し、まもなくミネヤンは天に召されました。牧師任が病院に行きましたら、いちばん隅の部屋に、ミネヤンは横たわっていました。33年間そこに暮らしたのです。そして最期は、いちばん親しい仲間たちが見守る中、ちょうど金持ちの前にいたラザロを天使がそっとアブラハムの懐に連れていくように、ミネヤンは静かに去っていきました。
「私が死んだら牧師任、誰が葬儀をしてくれるのでしょうか?」
「心配しなくても大丈夫。私が教会に連れて帰って立派な葬式を挙げるから。」
その約束通り、牧師任は遺体を引き取り教会で葬儀を執り行いました。その時、弔問に訪れたのは、長年一緒にいた医師たち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来たのは二人の掃除婦のおばさんでした。二人はミネヤンの亡骸を前にして、ひとしきり泣いた後、こう言ったのです。
「ミネヤンがいなくなって寂しくなりました。この人のいるところは平和だったのですよ」と。「平和だった。どうしてですか?」と牧師任は思わず聞き返しました。すると、掃除婦のおばさんはこう言いました。「この人は自分の都合を言わない人でしたから。患者同士がちょっと病状が悪くなって衝突をしたり、収拾がつかなくなったら、ミネヤンをベッドごとその間に入れるのです。そうすると、静けさが戻るのです。この人は自分の都合を言わない人でしたから、この人を間にいれたら、そこに静けさが戻るのです。この人のいるところは、平和だったのです。」ミネヤンは6人部屋にいましたが、しょっ中病室が変わっていました。行くたびに病室があっちこっちに変わっていたのです。
おばさんたちは言いました。「ミネヤンはここの人だったのですね。今、分かりました。この人は神さまの子どもだったのですね。」
「私は死ぬ時に、神様の子どもだったと、そう言ってもらいたい。だから平和のために働きたい」と言っていたミネヤンの言葉が現実のこととなったのです。
ミネヤンの死は、人から見ればみじめです。誰も身内がいないし、精神病院で息を引き取るし、しかし、掃除婦のおばさんたちは、ミネヤンが神の子だったと感じているのです。ミネヤンは義の実を平和の内に蒔きながら、その人生を全うされたのです。
皆さん、「平和を実現する人たち」というのは、上から出た知恵に生きる人たちであり、教会に一致と平和を形づくる人たちのことです。私たちが上からの知恵に生きるとき、私たちは平和を実現する神の子として、福音を宣べ伝え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そして、神さまの御心にかなった義の実を、それぞれの生活において結ぶことができるのです。
【2023년 8월 27일 주일예배(요약판)】
“화평하게 하는 자들” 야고보서 3장 13~18
오늘의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지혜의 온유함으로 행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온유한 행함이 평화를 실현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이라는 “씨앗”이 사람들의 마음에 뿌려집니다. 그 씨가 싹을 틔우고 성장하고 신앙이라는 열매를 맺는 것은 온유한 행함으로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평화 가운데 씨를 뿌려야 평화 가운데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다툼이나 혼란이 있는 곳에서는 말씀의 씨는 성장하지 않고 신앙의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사람들에게는 “온유한 행함”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온유한 행함을 보여야 합니다. 여러분, 이곳에 초대되어 모여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를 평화의 교제로 만들어내기 위해 “온유한 행함”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평화를 실현하는 온유함이 아니라 “독한 시기와 다툼”을 가졌다면 어떻게 될까요? 거기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16절)로 말미암아 대립이나 다툼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의 일인 것처럼 생각해 버립니다.
여러분, 이건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희 각자의 이야기입니다. 스스로는 별로 느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모든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시기의 불씨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혀를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시기도 능히 길들일 수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시기는 참 무서운 것입니다. 그 근본에 있는 자기 이익을 도모하려는 이기심, 자기가 중심인 마음은 무서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을 만들어내고 사람들 사이에 대립과 다툼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에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15절)이라고 야고보는 말했습니다. 사람을 하나님에게서 떼어내고 하나님의 마음인 사랑과 평화에서 때어내며 혼란과 다툼에 빠뜨리는 요소, 그 원인을 성경은 “귀신”이라는 상징적인 말로 나타냅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교회도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땅 위”에, 이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눈 앞에 있는 사람의 작은 말 한마디나 사소한 행동에만 집중하다 보면 이에 대해 시기하고 화내고 미워하며, 상대를 이기기 위해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며 심지어 자신의 이익만 추구한다면 교회 역시 혼란과 다툼의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기적인 마음에 지배 받지 않고 혼란과 다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즉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깊게 심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위로부터 난 지혜”(17절)를 자신 마음 속에 조금씩 쌓아 가는 것입니다.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17절)
예전에 전도집회 때, 사카키 미네오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기억하고 계실까요? 이 사카키 미네오 씨를 주위 사람들은 미네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인생의 절반(33년간)을 정신 병원에서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이 사람의 신원 보증인이 되어 줄 사람이 있었더라면 그는 사회에 복귀하여 충분히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보증을 서고 받아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는 날까지 정신 병원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어떤 한 목사님이 정기적으로 이 병원을 방문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 ‘당신이 마음 깊이 의지하고 붙잡고 있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라고 목사님이 묻자 미네양은 수줍은 듯이 ‘아니 목사님, 저한테 그런 것은 없어요. 저는 중학교밖에 안 나와서 잘 몰라요. 하지만 애써 세례를 받고 교인이 되었기 때문에 제가 죽을 때에, 아아, 이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였다, 그렇게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생각하면서 미네양이 무심코 성경을 펼쳤을 때 맨 먼저 눈에 들어온 말씀이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라는 말씀이었지요. 바로 이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미네양은 ‘화평하게 하는 자, 평화를 위해 일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이런 병원에 있으면서 무엇을 할 수 있나요?’ 라고 반쯤 농담으로 반문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미네양은 간암에 걸렸고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곧 돌아가셨습니다. 목사님이 병원에 가보니 가장 구석진 방 한쪽에 미네양이 누워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33년간 그곳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가는 길은 가장 친한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치 부자 집 대문 앞에 있었던 나사로를 천사가 가만히 아브라함의 품으로 데려간 것처럼 미네양은 그렇게 조용히 세상을 떠나 갔습니다.
‘내가 죽으면 목사님, 누가 장례를 해 줄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교회로 모셔서 훌륭한 장례식을 해 줄테니까요.’
약속대로 목사님은 시신을 인수하여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그 때 조문하러 찾아온 사람들은 오랜 세월 함께 했던 의사 선생님들이 아니었습니다. 찾아온 사람은 두 명의 청소부 아주머니였습니다. 아주머니들은 미네양의 유해를 앞에 두고 한동안 울고 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네양이 돌아가셔서 외로워졌습니다. 이 사람이 있는 곳은 평화로웠어요’ 라고. ‘평화로웠다고요? 왜요?’ 목사님은 엉겁결에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청소부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사정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에요. 환자끼리 조금 병세가 나빠져 충돌하거나 수습이 어렵게 되면 미네양이 누워있는 침대를 싸우는 환자 사이에 끼어 넣는 거예요. 그러면 고요함이 돌아와요. 이 사람은 자신의 사정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사람을 그 사이에 넣으면 거기에 고요함이 되돌아오거든요. 이 사람이 있는 곳은 늘 평화로웠어요.’ 미네양은 원래 6인실 방에 있었는데, 내내 병실이 바뀌었어요. 갈 때마다 병실이 이리저리 달랐거든요.
아주머니들은 말했습니다. ‘미네양이 여기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어요. 이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였던 거예요.’
‘내가 죽었을 때, 하나님의 자녀였다고 그렇게 말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평화를 위해 일하고 싶어요’ 라고 했던 그의 말이 이루어졌습니다.
미네양의 죽음은 사람이 보기에 비참합니다. 가족도 하나 없이 정신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으니까요, 하지만 청소부 아주머니들은 미네양이 하나님의 자녀였다고 느꼈습니다. 미네양은 바로 화평하게 하는 자였습니다. 화평으로 의의 열매를 심어 거두면서 그 인생을 다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화평하게 하는 자들이란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로 사는 사람들이고 교회의 일치와 평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리가 위로부터의 지혜로 살 때, 우리는 화평하게 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의의 열매를 각자의 생활에서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