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6절)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로 임하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물과 피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것을, 그리고 “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초에 요단 강으로 가셔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죄를 회개하기 위한 세례이기 때문에 전혀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던 것은 예수님께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오셨음을 보여드리기 위해서였고,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피”에 대해서 말인데 성경에서 “피”가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면 그것은 물론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의 죄가 용서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아니 우리의 죄뿐만 아니라 이 세상 전체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이야말로 그가 그리스도, 구세주이심을 증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거짓 선지자들은 이 세례 요한의 증거를 곡해하여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성령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인간 예수에게 들어감으로써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그리고 성령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예수를 떠났다. 따라서 십자가 위에서 죽은 것은 인간 예수였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은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분은 성령이 떠나신 인간 예수가 아니라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를 분명히 증언하는 것이 성령입니다. 6절 끝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물과 피로 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물의 세례를 받고 구세주로서의 공적 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림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7-9절)
“성령”이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시는 영이고, “물과 피”라는 것은 예수님 자신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온 성령과 예수님 자신이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증언하시니 더욱 진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은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신 것이기도 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요15:26-27)
하나님께서 증언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자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분이라는 것, 사람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희생되셨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 하나님의 증언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것이 2000년 전에 일어난 일이라 실제로 눈으로 확인하거나 만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너무 오래 되어서 확인할 수 없는 그런 것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반적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요한은 이 사실을 알고, 믿는 것은 자신의 머리나 이성이나 경험으로는 안 되며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지해야만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이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써 오늘날 우리도 성경 말씀을 통해 알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일을 예배 설교나 성경을 읽고 계속 듣다 보면 그 일이 자신에게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과 관련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 때, 우리는 현실에 그 일과 관계가 있게 됩니다. 자신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관계되어 있음을 알았을 때, 즉 하나님과 만났을 때 믿는다는 것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일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그것이 진실임을 증언해 주시고 믿기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하심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증언하고 있느냐 하면 11절입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11절)
영생이 예수님 안에 있다고 요한은 단언하고 있습니다. 이 영생이란 영원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이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님의 생명이 부여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연결되어 교제를 갖기 위해서는 이 예수님이 하신 일, 하나님께서 증언해 주신 것을 믿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메시지가 모두 담겨 있는 예수님의 일을 듣는 것, 이로부터 예수님과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증언되는 하나님과 마주보며 살아가는 삶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과 진정으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바라볼 만큼의 삶을 버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걷는 삶이야말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관계에 들어간 사람에게는 예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에도 부여될 것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2023年6月4日 主日礼拝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ヨハネ福音書(요한복음) 15章 26~27節
〇讃 頌 讃頌歌 33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23 (詩編43編)
〇讃 頌 讃頌歌 93
〇聖書奉読 ヨハネの手紙一(요한일서) 5章 6~12節
〇説 教 「神の証し(하나님의 증거)」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543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報 告
〇頌 栄 讃頌歌 2
〇祝 祷
【 2023年 6月 4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神の証し」 ヨハネの手紙一 5章 6~12節
「この方は、水と血を通って来られた方、イエス・キリストです。水だけではなく、水と血とによって来られたのです。そして、霊はこのことを証しする方です。霊は真理だからです。」(6節)
ヨハネは、イエス・キリストが「水と血を通って来られた方」であることを強調しています。ここでの水と血が何を意味しているのかと言いますと、「水」はイエス・キリストが洗礼者ヨハネから洗礼を受けられたことを、「血」はイエス・キリストが十字架の上で死なれたことを意味しています。
イエスさまは公生涯の初めにヨルダン川に行かれ、洗礼者ヨハネから洗礼を受けられました。洗礼者ヨハネの洗礼というのは、罪を悔い改めるための洗礼でありますので、全く罪のない神の子であるイエスさまが洗礼を受ける必要など全くありません。それでもあえてイエスさまが洗礼を受けられたのは、イエスさまに罪があったからではなく、ご自分が人として来られたことを示すためであり、それが神さまの御心であったことを示すためでした。
それから「血」についてですが、聖書で「血」が象徴するものといえば、それはもちろん十字架です。イエスさまは十字架の上で血を流してくださいました。それによって私たちの罪が赦されました。それは、私たちの罪のため、いや、私たちの罪だけでなく、この世全体の罪のためでした。イエスさまが十字架で死なれたという事実こそ、彼がキリスト、救い主であるということを証言している、というのです。
ただ、偽預言者たちはこの洗礼者ヨハネの証しを曲解して教えていました。偽預言者たちは、神の霊が、洗礼者ヨハネから洗礼を受けた人間イエスに宿ることによって、イエスは神の子となった。そして、神の霊は、イエスが十字架につけられる前に、イエスから離れ去った。よって、十字架のうえで死んだのは、人間イエスであったと教えたのです。
そのために、ヨハネは「水だけではなく、水と血によって来られたのです」と言うのです。十字架につけられて死なれたのは、聖霊が離れ去った人間イエスではなくて、人となられた神さまの独り子であるイエス・キリストであるのです。
このことをはっきりと証しするのが聖霊です。6節の最後にこうあります。「そして“霊”はこのことを証しする方です。“霊”は真理だからです。」(6b節)
イエス・キリストは、水と血を通って来られました。イエス・キリストは、洗礼者ヨハネから水の洗礼を受けて、救い主としての公の生涯を始められました。そして、十字架のうえで血を流すことによって、神の救いを成し遂げられたのです。このイエス・キリストを証ししてくださるのが、神の霊である聖霊であるのです。
7節をご覧下さい。「証しするのは三者で、霊と水と血です。この三者は一致しています。わたしたちが人の証しを受け入れるのであれば、神の証しは更にまさっています。神が御子についてなさった証し、これが神の証しだからです。」(7-9節)
「霊」というのは神さまから来る霊であり、「水と血」というのは、イエスさま御自身のことを表しているのですから、神さまから来た聖霊とイエスさま御自身が証ししているわけですね。人ではなく神さまが証しされているのですから、なおさら真実であると言えます。
このことはイエスさま御自身が語られたことでもありました。ヨハネによる福音書15章26節にこのようにあります。「わたしが父のもとからあなたがたに遣わそうとしている弁護者、すなわち、父のもとから出る真理の霊が来るとき、その方がわたしについて証しをなさるはずである。あなたがたも、初めからわたしと一緒にいたのだから、証しをするのである。」(ヨハネ15:26-27)
神さまが証言しているわけですから、「イエスさまが神さまの愛する子であり、神さまの御心にかなう方であること、人のために神の子が犠牲となった」ということは受け入れやすいと思います。
しかし、現実的には、この神さまの証言は受け入れ難いのです。その理由は、イエスさまの十字架なんて2000年前の出来事であり、実際目で確認したり、触ったりしたりすることはできないからです。そんなことは古くて、確かめられないようなことは信じられないと思うのが一般的な感覚だと思います。
ヨハネは、このことを知り信じるのは、自分の頭や理性や経験ではだめで、聖霊の働きかけに頼って、はじめて可能となると語っているのです。
この聖霊に働きによって、今の私たちでも、聖書の御言葉を通して知り信じることが出来るのです。十字架の出来事を礼拝の説教や聖書を読み、聴き続けていると、その事が、自分に語られていることなのだ、自分と関係していることなのだと気付かされていきます。その時、私たちは、現実にその出来事と関係していることになります。自分がイエスさまの十字架と関係していると知った時に、すなわち神さまと出会った時に、信じるということが始まるのです。
そのイエスさまの出来事が、現代を生きる私たちにも、それが真実であると証ししてくださり、信じるまでに至らせるのが、聖霊なる神さまの働きなのです。
では、神さまは具体的に何を証しされているのかと言いますと、11節です。「その証しとは、神が永遠の命をわたしたちに与えられたこと、そして、この命が御子の内にあるということです。」(11節)
永遠の命が御子の内にある、とヨハネは言い切っています。この永遠の命とは、永遠に長く生きることではありません。永遠の命とは、神の御子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て、イエスさまの命に与ることです。
私たちがこの永遠の生命に与るためには、イエスさまとつながる必要があります。そして、イエスさまとつながり交わりを持つためには、このイエスさまのなされたこと、神さまが証ししてくださったことを信じることが必要です。
神さまのメッセージがすべて込められている、イエスさまの出来事を聞く、このことから、イエスさまとの関係が始まります。ここから、イエスさまを見つめ、証しされている神さま様と向き合って生きていく人生が始まります。
神さまと本当に向き合うには、自分を見つめるだけの人生を捨てることが必要です。自分を見つめることを捨て、神さまを見つめながら歩む人生こそが、神さまとの関係にあるということです。この関係に入った人には、イエスさまの内にある永遠の生命にも与ることが約束されているのです。
【2023년 6월 4일 주일예배(요약판)】
“하나님의 증거” 요한일서 5장 6~12절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6절)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로 임하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물과 피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것을, 그리고 “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초에 요단 강으로 가셔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죄를 회개하기 위한 세례이기 때문에 전혀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던 것은 예수님께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오셨음을 보여드리기 위해서였고,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피”에 대해서 말인데 성경에서 “피”가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면 그것은 물론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의 죄가 용서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아니 우리의 죄뿐만 아니라 이 세상 전체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이야말로 그가 그리스도, 구세주이심을 증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거짓 선지자들은 이 세례 요한의 증거를 곡해하여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성령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인간 예수에게 들어감으로써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그리고 성령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예수를 떠났다. 따라서 십자가 위에서 죽은 것은 인간 예수였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은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분은 성령이 떠나신 인간 예수가 아니라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를 분명히 증언하는 것이 성령입니다. 6절 끝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물과 피로 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물의 세례를 받고 구세주로서의 공적 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림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7-9절)
“성령”이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시는 영이고, “물과 피”라는 것은 예수님 자신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온 성령과 예수님 자신이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증언하시니 더욱 진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은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신 것이기도 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요15:26-27)
하나님께서 증언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자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분이라는 것, 사람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희생되셨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 하나님의 증언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것이 2000년 전에 일어난 일이라 실제로 눈으로 확인하거나 만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너무 오래 되어서 확인할 수 없는 그런 것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반적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요한은 이 사실을 알고, 믿는 것은 자신의 머리나 이성이나 경험으로는 안 되며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지해야만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이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써 오늘날 우리도 성경 말씀을 통해 알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일을 예배 설교나 성경을 읽고 계속 듣다 보면 그 일이 자신에게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과 관련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 때, 우리는 현실에 그 일과 관계가 있게 됩니다. 자신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관계되어 있음을 알았을 때, 즉 하나님과 만났을 때 믿는다는 것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일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그것이 진실임을 증언해 주시고 믿기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하심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증언하고 있느냐 하면 11절입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11절)
영생이 예수님 안에 있다고 요한은 단언하고 있습니다. 이 영생이란 영원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이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님의 생명이 부여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연결되어 교제를 갖기 위해서는 이 예수님이 하신 일, 하나님께서 증언해 주신 것을 믿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메시지가 모두 담겨 있는 예수님의 일을 듣는 것, 이로부터 예수님과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증언되는 하나님과 마주보며 살아가는 삶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과 진정으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바라볼 만큼의 삶을 버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걷는 삶이야말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관계에 들어간 사람에게는 예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에도 부여될 것이 약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