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느닷없이 이런 말을 하는데, 그것은 이 편지가 교회로 보내진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를 읽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죠.
“예수 그리스도”, 이 이름이 나타내는 것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믿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13절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말씀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1:12-13)
“말씀”이란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는 예수님과 유대인 의원인 니고데모와의 대화가 쓰여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기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나를 믿고 세례를 받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믿고 있다는 것은 이미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태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믿었기 때문에 사랑해 주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몇 번이나 말하는 것 같지만 우리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예수님을 믿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셈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인 “하나님을 사랑할 것”, “이웃을 사랑할 것”이 권장되고 있으며, 요한은 특히 우리가 서로 사랑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시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해 주신다. 이 사랑의 상호관계 속에 믿는 자는 살아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아까도 말했듯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이 전제가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우러러볼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사랑이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랑에서 도망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합니다. 물론 영원한 구원, 영원한 생명을 포기한다고 한다면 별개이지만 우리가 구원받고 싶다면 이 “서로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계명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3절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3절)
여기서 “무거운 것”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말은 “부담”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30) 라는 말씀을 상기하게 해 줍니다.
그럼 왜 요한은 “하나님의 계명은 무겁지 않다, 가볍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우리 대신 완전히 지키신 예수님으로부터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신 예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보혜사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요14:26 참조)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타고난 사랑으로 이 계명을 지키려면 이 계명은 어렵고 무거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요한은 4절에서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4절)
여기서 “세상”이란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상을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적인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을 말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요한일서 2장 15~16절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2:15-16)
세상은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로부터 떼어놓으려고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풍요로운 생활을 사랑하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자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세상을 이겨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3)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우리도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도 요한과 한 목소리로 “세상을 이기는 승리, 그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믿는 우리야말로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승리를 받은 자로서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래만 보고 있는 것은 왜일까요?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자입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서로 사랑하는 교제를 이어갑시다.
023年5月21日 主日礼拝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ヨハネ福音書(요한복음) 1章 12~13節
〇讃 頌 讃頌歌 32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21 (詩編34編)
〇讃 頌 讃頌歌 585
〇聖書奉読 ヨハネの手紙一(요한일서) 4章 7~21節
〇説 教 「世に打ち勝つ信仰(세상에 이기는 신앙)」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357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報 告
〇頌 栄 讃頌歌 2
〇祝 祷
【 2023年 5月 21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世に打ち勝つ信仰」 ヨハネの手紙一 5章1~5節
「イエスがメシアであると信じる人は皆、神から生まれた者です。」(1節)
ヨハネは唐突にこのようなことを語るんですけども、それはこの手紙が教会に宛てられた手紙であるからです。この手紙を読む人たちがイエス・キリストの名を信じている人たちであるという前提があるからですね。
「イエス・キリスト」、この名前が示すのは、イエスがメシア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イエスさまの名を信じるというのは、イエスさまがメシアであるということを信じる人です。
ヨハネによる福音書1章12~13節にこのようにあります。「言は、自分を受け入れた人、その名を信じる人々には神の子となる資格を与えた。この人々は、血によってではなく、肉の欲によってではなく、人の欲によってでもなく、神によって生まれたのである。」(ヨハネ1:12-13)
「言」とは、神さまの独り子であるイエス・キリストのことです。このイエス・キリストを受け入れた人は、神の子となる資格が与えられるのです。
ヨハネによる福音書3章には、イエスさまとユダヤ人の議員であるニコデモとの対話が記されています。そこで、イエスさまは、「人は新たに生まれなければ、神の国を見ることはできない。」(ヨハネ3:3)「だれでも水と霊とによって生まれなければ、神の国に入ることができない」(ヨハネ3:5)と教えられました。
ニコデモは、ファリサイ派に属しており、神の国に入るには、神の掟を守らねばならないと考えていました。しかし、イエスさまは、神の国に入るには、私を信じて洗礼を受け、聖霊によって新しく生まれなければならないと教えられたのです。
皆さん、私たちは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ています。信じているということは、すでに聖霊によって新しく生まれ、神の子と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神の子とされているのですから、神さまは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います。
ただ、ここで注意したいことは、私たちが信じたから愛してくださるというのではありません。それよりも先に、何度も言うようですが、私たちよりも先に神さまが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り、イエスさまを信じるようにさせてくださ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この神さまの愛がある故に私たちは神の子であるわけです。
そして、私たちが神の子であるが故に、神さまの掟である「神さまを愛すること」「隣人を愛すること」が勧められており、ヨハネは特に、私たちが互いに愛し合うことを強調しているのです。
神さまが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るが故に私たちも神さまを愛する。私たちが神さまを愛するが故に神さまも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る。この愛の相互関係の中に、信じる者は生かされています。勿論そこには、先程も言いましたように、イエスさまの十字架に示されている神さまの愛というものが前提にあります。イエスさまの十字架を見上げる度に私たちは神さまの愛を知るのです。
皆さん、私たちにはイエスさまの愛が刻まれているのです。この愛から逃げることは赦されません。勿論、永遠の救い、永遠の命を放棄すると言うならば別ですが、私たちが救われたいと思うならば、この「互いに愛し合う」という神さまの掟から逃れられないのです。なぜなら、神さまの掟を守ることが、すなわち神さまを愛することになるからです。
ヨハネはこの「神の掟を守ること」が難しいものではないと言います。3節です。「神を愛するとは、神の掟を守ることです。神の掟は難しいものではありません。」(3節)
ここで「難しいもの」と訳されている言葉は「重荷」とも訳せます。「神の掟は重荷とはなりません」ということですね。イエスさまが語られた「わたしの軛は負いやすく、わたしの荷は軽い」(マタイ11:30)という御言葉を思い起こします。
では、なぜ、ヨハネは、「神の掟は難しいものではない。重荷ではない」と言えるのでしょうか。それは、私たちが神の掟を、私たちに代わって神の掟を完全に守られたイエスさまから受けるからです。神の掟を完全に守られたイエスさまの聖霊が、私たちに、助け主として与えられているからです。(ヨハネ14:26参照)
イエスさまは、「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愛したように、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という掟を与えられました。私たちが生まれながらにもっている愛で、この掟を守ろうとするならば、この掟は難しいもの(実行不可能なもの)です。しかし、私たちにはイエス・キリストを通して聖霊が与えられています。聖霊において、私たちの心に神さまの愛が注がれています。ですから、私たちにとって、イエス・キリストの掟は難しいものではないのです。
ヨハネは4節でこう語っています。「神から生まれた人は皆、世に打ち勝つからです。」(4節)
ここでの「世」というのは、神さまに背いている世のことです。また、神さまの敵である悪魔が支配する世のことです。世は、私たちが神さまの掟を守ることを妨げます。ですから、ヨハネは、2章15~16節で、こう記したのです。「世も世にあるものも、愛してはいけません。世を愛する人がいれば、御父への愛はその人の内にありません。なぜなら、すべて世にあるもの、肉の欲、目の欲、生活のおごりは、御父から出ないで、世から出るからです。」(2:15-16)
世は、私たちを誘惑し、私たちをイエス・キリストとの交わりから引き離そうとします。目に見えない神さまよりも、目に見える豊かな生活を愛するように誘惑します。
しかし、「イエスはメシアであり、神の子である」と信じる私たちは、世に打ち勝つ者であるのです。それは、私たちの主であるイエス・キリストが、十字架の死と復活によって、世に打ち勝たれた御方であるからです。
イエスさまは、弟子たちにこう言われました。「あなたがたには世で苦難がある。しかし、勇気を出しなさい。わたしは既に世に勝っている。」(ヨハネ16:33)
世に勝っている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ゆえに、私たちも世に勝っているのです。私たちも、ヨハネと声を合わせて、「世に打ち勝つ勝利、それが私たちの信仰です」と語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皆さん、イエスさまが神の子であると信じる私たちこそ、世に打ち勝つ勝利者です。私たちは神さまの愛の勝利にあずかっている者として、互いに愛し合っているのです。
それなのに、下ばかり見ているのはどうしてでしょうか。皆さんは、神さまから生まれた者です。世に勝つことができるのです。ですから、皆さん、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て、互いに愛し合う交わりを続けていきましょう。
【2023년 5월 21일 주일예배(요약판)】
“세상을 이기는 신앙” 요한일서 5장 1~5절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1절)
요한은 느닷없이 이런 말을 하는데, 그것은 이 편지가 교회로 보내진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를 읽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죠.
“예수 그리스도”, 이 이름이 나타내는 것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믿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13절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말씀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1:12-13)
“말씀”이란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는 예수님과 유대인 의원인 니고데모와의 대화가 쓰여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기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나를 믿고 세례를 받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믿고 있다는 것은 이미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태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믿었기 때문에 사랑해 주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몇 번이나 말하는 것 같지만 우리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예수님을 믿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셈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인 “하나님을 사랑할 것”, “이웃을 사랑할 것”이 권장되고 있으며, 요한은 특히 우리가 서로 사랑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시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해 주신다. 이 사랑의 상호관계 속에 믿는 자는 살아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아까도 말했듯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이 전제가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우러러볼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사랑이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랑에서 도망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합니다. 물론 영원한 구원, 영원한 생명을 포기한다고 한다면 별개이지만 우리가 구원받고 싶다면 이 “서로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계명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3절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3절)
여기서 “무거운 것”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말은 “부담”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30) 라는 말씀을 상기하게 해 줍니다.
그럼 왜 요한은 “하나님의 계명은 무겁지 않다, 가볍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우리 대신 완전히 지키신 예수님으로부터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신 예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보혜사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요14:26 참조)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타고난 사랑으로 이 계명을 지키려면 이 계명은 어렵고 무거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요한은 4절에서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4절)
여기서 “세상”이란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상을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적인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을 말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요한일서 2장 15~16절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2:15-16)
세상은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로부터 떼어놓으려고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풍요로운 생활을 사랑하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자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세상을 이겨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3)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우리도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도 요한과 한 목소리로 “세상을 이기는 승리, 그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믿는 우리야말로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승리를 받은 자로서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래만 보고 있는 것은 왜일까요?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자입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서로 사랑하는 교제를 이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