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 말씀은 역대상 4장 9~10절의 말씀입니다 . 역대상에는 600여명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 4장에도 유다의 자손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누가 누구의 아들이고 누가 누구를 낳았다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만,유독 야베스에 대해서만은 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유다 지파의 후예지만, 유다 지파 중에서도 가장 별볼일 없는 가문에서 태어난 완전한 지류에 불과한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베스의 이름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그의 신앙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그가 기도한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10절)
야베스의 이 기도는 어떤 의미에서 자신 본위적인 기도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기도한 것도 아닙니다. 야베스는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영토를 넓힌다는 것은 남의 영토를 빼앗는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이기적인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역대상에는 어째서 유다족의 지파에 불과한 야베스의 기도를 여기에 기록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이 책이 기록된 시대 배경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 유수를 끝내고 이스라엘로 귀환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너무 황폐해져서 재건이 곤란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런 마이너스로는 어찌할 수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야베스처럼 날마다 하나님께 “나의 지역을 넓히옵소서” 라고 기도하면서 일할 때 재건은 가능해진 것입니다. 반드시 기적은 일어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 19의 두려움 속에 있고, 물가 급등의 여파로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생활에 있어서도 여러가지 제약이 있어서 꿈이나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한번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중요성을 확인하면서 스스로의 기도 자세를 깊이 반성하고 주님의 마음에 맞는 기도를 드리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야베스라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야베스의 생애를 알기에는 너무 자료가 없습니다. 9절에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거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선 그의 이름을 어머니가 지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어머니가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는 이유로 야베스라고 붙였습니다. 야베스란 “괴로움”이나 “아픔”이라는 의미입니다. 당시는 보통 아버지가 이름을 짓는데 그 어머니가 이름을 지은 것을 보면 아마도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는 죽었으므로 온갖 심령의 고통 가운데서 낳았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야베스는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이름이 중요한데 어머니가 자기 아들의 이름을 (슬픔의 사람, 고통의 사람, 괴로움의 사람)이라는 야베스로 지은 것을 보면 야베스가 태어날 때에 그 가정은 엄청난 어려움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본인 역시 부모나 사람들로부터 “괴로움”이나 “아픔”으로 그렇게 불리면 참으로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자라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야베스는 그의 형제들 중에서 가장 존경받았다고 말합니다. 어떤 해설에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하는 것은 족장이 된 것을 의미한다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야베스는 태어난 환경이나 상황, 자신의 이름을 거슬러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위대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야베스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는가 하면, 그는 계속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음에 야베스의 기도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네 가지 기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는 먼저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이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아까 말했듯이 그의 인생에는 육체적, 정신적, 환경적 등 다양한 고난이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베스 “나를 축복해 주옵소서” 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11:24)
야베스는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새해를 맞이하여 하나님 앞에서 솔직해지고, 이치로 따지는 일 없이 하나님께 “나를 축복해 주옵소서” 라고 온전한 신앙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기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야베스가 기도한 것은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나의 지역이라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땅이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는 능력이나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나 혹은 자신의 생활권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각각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자신의 생활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범위 내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합니다. 자신의 한계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한계를 넘는다면 자신은 할 수 없는 무리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야베스는 그 타고난 육체적, 환경적인 것으로 자신의 지역이 다른 사람보다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야베스는 “자신이 가진 한계를 넓혀 주옵소서.” “자신의 능력을, 자신의 시야를 넓혀 주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가지는 한계를 넓힌다는 것은 그만큼 해야 할 일이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책임도 따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이상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없었던 문제도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만큼 고생도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이나 봉사에 있어서도 그렇겠지요. 일손을 늘리면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지금까지와 같은 일이라면 익숙해져 있고 마음이 맞은 사람들뿐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와 같은 무난한 생활 방식이 좋은 것일까요? 현대는 “등신대인 나로 좋다” 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뒤집어 말하면 “비전이 없다” “희망이 없다” “신앙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으로 좋다고 말씀하신다면 그것으로 좋지요. 하지만 만약 하나님께서 “더 나에게 구하라”고 원하고 계신다면 어떨까요? 하나님이 더 당신에게 주고 싶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는데 “이게 제 몫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면 아까운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 주어집니다. 풍부한 것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의 자신의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소서” 라고 야베스가 기도했듯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더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세 번째 기도입니다.
그리고, 야베스는 마지막으로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야베스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항상 재앙과 고통이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재앙이나 괴로움이 있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손이 자신에게 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켜 주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견딜 수 없는 시련은 주지 않으신다. 고생하는 일은 있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기쁨이 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야베스의 기도를 우리도 기도합시다. 지금의 우리의 삶이 야베스의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손을 믿고 기도하면 귀중한 자로 바꿔 주시고, 지경을 넓혀 주시고, 환란과 근심을 사라지게 하실 것입니다. 새해에는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고 올 한 해 하나님께 계속 기도해 갑시다.
2023年1月1日 新年主日礼拝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詩編(시편) 37編 3(4)~4(5)節
〇讃 頌 讃頌歌 29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94 (新年 ②)
〇讃 頌 讃頌歌 550
〇聖書奉読 歴代誌上(역대상) 4章 9~10節
〇説 教 「新年の祈り(신년의 기도)」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543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報 告
〇頌 栄 讃頌歌 2
〇祝 祷
【 2023年 1月 1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新年の祈り」 歴代誌上 4章 9~10節
今日与えられた御言葉は、歴代誌上4章9~10節の御言葉ですが、この歴代誌上4章にはユダの子孫の名前が羅列されているのですが、ここにヤベツという名前が出て来ます。ただ、ヤベツの名前が出て来ますが、親の名前も兄弟の名前も出て来ません。また、彼の子孫の名前もありません。突然、ヤベツの名前が出て来て、消えています。彼はユダ族ではありますが、全くの支流に過ぎない人物なのです。それなのに、ヤベツの名前がここに記されているのは、彼の信仰のゆえです。聖書には彼が祈った祈りが記されています。
「どうかわたしを祝福して、わたしの領土を広げ、御手がわたしと共にあって災いからわたしを守り、苦しみを遠ざけてください。」(10節)
ヤベツのこの祈りは、ある意味自分本位な祈りです。誰かのために執り成しの祈りをしてい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また、イスラエル民族のために祈ったものでもありません。ヤベツは「わたしの領土を広げ」と言っていますが、これを文字通り受け取るならば、領土を広げるというのは、他人の領土を奪うと言うことです。全く身勝手な祈りと言えます。それなのに歴代誌はなぜユダ族の支流にすぎないヤベツの祈りをここに記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
それは、この書が記された時代背景にありました。イスラエルの人々が、バビロン捕囚を終えて、イスラエルに帰還したことと関係しています。イスラエルは、荒れ果ててしまい、再建困難な状態にありました。こんなマイナスではどうにもならない状態。しかし、ヤベツのように、日々、神さまに領土を広げて下さいと祈り求めて働く時、再建は可能となったのです。必ず奇蹟は起こることを証ししているのです。
私たちは未だにコロナ感染症の恐れの中にあり、物価高騰のあおりで生活が苦しくなっています。生活においても色々な制約があって、夢や希望を持てない状況にあります。だからこそ、私たちは、いま一度、神さまへの祈りの重要性を確認しつつ、自らの祈りの姿勢を深く反省し、主の御心に適った祈りを捧げる者となりたいと願います。
では、ヤベツという人のことについて考えてみたいと思います。ヤベツのその生涯を知るには、あまりにも資料がありません。9節に記されているだけです。それでも、そこから分かることはあります。
まず、彼の名前は母親がつけたということです。しかも母親が「私が悲しみのうちにこの子を産んだから」という理由でヤベツと名付けました。ヤベツというのは、「苦しみ」とか「痛み」とかいう意味です。当時は父親が名前を付けるものでしたが、母親が名前をつけています。もしかしたら、ヤベツが母親の胎の中にいるときに父親は死んだのかもしれません。母親がそのような心痛のさなかに生んだことが考えられます。あるいはヤベツは身体的障害をもって生まれたのかもしれません。
生まれた時から、「この子をちゃんと育てられるだろうか?」「ちゃんと育つのだろうか?」と母親は悩んだのでしょう。だから、その子に「ヤベツ(苦しみ・痛み)」という名をつけました。
しかし、親や人々から「苦しみ」とか「痛み」とか、呼ばれたらたまったものじゃありません。彼が大きくなったらどうなったのでしょう?「ヤベツは兄弟たちの中で最も尊敬されていた」と言います。ある解説には、「最も尊敬されていた」というのは、族長になったことを意味するとありました。とにかく、ヤベツは生まれた環境や状況、自分の名前に逆らって、神さまの祝福を受け、偉大な人になったということです。
なぜ、ヤベツは神さまの祝福を受けたのかと言いますと、彼は祈り続けたからです。
では、次にヤベツの祈りを考えて見たいと思います。ヤベツの祈りは、四つの祈りから成り立っています。
彼はまず「どうかわたしを祝福して下さい」と祈っています。彼は先程言いましたように、彼の人生には肉体的、精神的、環境的など様々な苦難が伴っていました。それは自分の力ではどうしようもないものでした。彼は祈るしかなかったのです。神さまの恵みに頼るしかありませんでした。そこでヤベツは「わたしを祝福してください」と祈ったのです。
マルコによる福音書11章24節にイエスさまの祈りに関する教えがあります。「だから、言っておく。祈り求めるものはすべて既に得られたと信じなさい。そうすれば、そのとおりになる。」(マルコ11:24)
ヤベツは確固たる信仰をもって神さまに祈りました。私たちも迎えたこの一年、神さまの御前で素直になって、理屈抜きで、神さまに「私を祝福して下さい」と信仰を持って祈る者でありたいと願います。
次にヤベツが祈ったことは、「わたしの領土を広げてください」ということでした。この領土というのは、単純に自分の土地ということではなくて、自分が持つ能力とか、神さまから与えられた賜物とか、あるいは自分の生活圏を表していると思われます。私たちはそれぞれ自分が持っている能力とか自分の生活圏というのを知っています。その範囲内で自分に何が出来るのかとかを考えます。自分の限界というものを知っているわけです。その限界を超えるならば自分には出来ない、無理なことと判断しているわけですね。
ヤベツはその生まれもった肉体的、環境的なことで自分の領土が他の人よりも限られていました。だからこそ、ヤベツは自分の持つ限界を広げてください。自分の能力を、自分の視野を広げてくださいと祈りました。
しかし、自分の持つ限界を広げるというのは、それだけ、やら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が増えるということです。責任も伴います。従って、これまで以上の努力が必要です。しかも、これまでにない問題も起こったりします。それだけ苦労も増えるということです。
皆さんの仕事や奉仕においてもそうでしょう。仕事の手を広げると、色んな人と出会うし、色んなことが起こります。これまでと同じ仕事でしたら慣れていますし、気の合った人たちばかりです。
それじゃ、これまでのような無難な生き方が良いのでしょうか? 現代は「等身大の自分で良い」と言う人たちがたくさんいます。それは裏を返せば、「ビジョンがない」「希望がない」「信仰がない」ということです。
神さまがそれで良いとおっしゃるならば、それで良いのでしょう。しかし、もし神さまが「もっとわたしに求めなさい」と願っておられるなら、どうでしょうか。
神さまがもっとあなたに与えたいものがあると思っておられるのに、「これが私の身の丈です」と言っているなら、勿体ない話です。
皆さん、神さまに祈り求めれば与えられるのです。豊かなものが与えられます。でも、それは今の自分の能力では手に余ることもあります。だから、「御手がわたしと共にあって」とヤベツが祈るように、神さまの助けをもっと祈る必要があります。これが三つ目の祈りですね。
そして、ヤベツは最後に「災いからわたしを守り、苦しみを遠ざけてください」と祈っております。ヤベツはその名前が示すように、いつも災いと苦しみがつきまとっていました。だから、彼はこのように祈っているのです。彼は諦めません。災いや苦しみがあったとしても、神さまの御手が自分にはある、神さまが必ず守ってくださるという信仰がありました。神さまは堪えられない試練は与えられない。苦労することはあったとしても、神さまと共にあるという喜びが彼にはあったのです。
皆さん、このヤベツの祈りを私たちも祈りましょう。神さまの御手を信じて、もっと豊かなものを神さまは私に用意してくださっていると信じて、今年、一年、神さまに祈り続けて行きましょう。
【2023년 1월 1일 주일예배(요약판)】
“신년의 기도” 역대상 4장 9~10절
오늘의 성경 말씀은 역대상 4장 9~10절의 말씀입니다 . 역대상에는 600여명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 4장에도 유다의 자손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누가 누구의 아들이고 누가 누구를 낳았다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만,유독 야베스에 대해서만은 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유다 지파의 후예지만, 유다 지파 중에서도 가장 별볼일 없는 가문에서 태어난 완전한 지류에 불과한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베스의 이름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그의 신앙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그가 기도한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10절)
야베스의 이 기도는 어떤 의미에서 자신 본위적인 기도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기도한 것도 아닙니다. 야베스는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영토를 넓힌다는 것은 남의 영토를 빼앗는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이기적인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역대상에는 어째서 유다족의 지파에 불과한 야베스의 기도를 여기에 기록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이 책이 기록된 시대 배경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 유수를 끝내고 이스라엘로 귀환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너무 황폐해져서 재건이 곤란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런 마이너스로는 어찌할 수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야베스처럼 날마다 하나님께 “나의 지역을 넓히옵소서” 라고 기도하면서 일할 때 재건은 가능해진 것입니다. 반드시 기적은 일어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 19의 두려움 속에 있고, 물가 급등의 여파로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생활에 있어서도 여러가지 제약이 있어서 꿈이나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한번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중요성을 확인하면서 스스로의 기도 자세를 깊이 반성하고 주님의 마음에 맞는 기도를 드리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야베스라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야베스의 생애를 알기에는 너무 자료가 없습니다. 9절에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거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선 그의 이름을 어머니가 지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어머니가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는 이유로 야베스라고 붙였습니다. 야베스란 “괴로움”이나 “아픔”이라는 의미입니다. 당시는 보통 아버지가 이름을 짓는데 그 어머니가 이름을 지은 것을 보면 아마도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는 죽었으므로 온갖 심령의 고통 가운데서 낳았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야베스는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이름이 중요한데 어머니가 자기 아들의 이름을 (슬픔의 사람, 고통의 사람, 괴로움의 사람)이라는 야베스로 지은 것을 보면 야베스가 태어날 때에 그 가정은 엄청난 어려움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본인 역시 부모나 사람들로부터 “괴로움”이나 “아픔”으로 그렇게 불리면 참으로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자라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야베스는 그의 형제들 중에서 가장 존경받았다고 말합니다. 어떤 해설에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하는 것은 족장이 된 것을 의미한다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야베스는 태어난 환경이나 상황, 자신의 이름을 거슬러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위대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야베스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는가 하면, 그는 계속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음에 야베스의 기도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네 가지 기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는 먼저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이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아까 말했듯이 그의 인생에는 육체적, 정신적, 환경적 등 다양한 고난이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베스 “나를 축복해 주옵소서” 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11:24)
야베스는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새해를 맞이하여 하나님 앞에서 솔직해지고, 이치로 따지는 일 없이 하나님께 “나를 축복해 주옵소서” 라고 온전한 신앙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기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야베스가 기도한 것은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나의 지역이라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땅이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는 능력이나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나 혹은 자신의 생활권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각각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자신의 생활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범위 내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합니다. 자신의 한계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한계를 넘는다면 자신은 할 수 없는 무리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야베스는 그 타고난 육체적, 환경적인 것으로 자신의 지역이 다른 사람보다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야베스는 “자신이 가진 한계를 넓혀 주옵소서.” “자신의 능력을, 자신의 시야를 넓혀 주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가지는 한계를 넓힌다는 것은 그만큼 해야 할 일이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책임도 따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이상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없었던 문제도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만큼 고생도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이나 봉사에 있어서도 그렇겠지요. 일손을 늘리면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지금까지와 같은 일이라면 익숙해져 있고 마음이 맞은 사람들뿐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와 같은 무난한 생활 방식이 좋은 것일까요? 현대는 “등신대인 나로 좋다” 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뒤집어 말하면 “비전이 없다” “희망이 없다” “신앙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으로 좋다고 말씀하신다면 그것으로 좋지요. 하지만 만약 하나님께서 “더 나에게 구하라”고 원하고 계신다면 어떨까요? 하나님이 더 당신에게 주고 싶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는데 “이게 제 몫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면 아까운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 주어집니다. 풍부한 것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의 자신의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소서” 라고 야베스가 기도했듯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더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세 번째 기도입니다.
그리고, 야베스는 마지막으로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야베스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항상 재앙과 고통이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재앙이나 괴로움이 있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손이 자신에게 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켜 주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견딜 수 없는 시련은 주지 않으신다. 고생하는 일은 있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기쁨이 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야베스의 기도를 우리도 기도합시다. 지금의 우리의 삶이 야베스의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손을 믿고 기도하면 귀중한 자로 바꿔 주시고, 지경을 넓혀 주시고, 환란과 근심을 사라지게 하실 것입니다. 새해에는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고 올 한 해 하나님께 계속 기도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