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어진 말씀은 요한복음 1장입니다만, 요한복음에는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이야기에 일관되게 회자되고 있는, 밤의 어둠 속에 빛나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장 1절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1:1) 1장 4절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1:4-5) 그리고 오늘의 말씀인 14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4절)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보다 늦게, 기원 1세기 말 무렵에 기록된 것입니다. 교회에는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이 거의 없어진 시대였습니다. 그런데도 요한은 자신의 오랜 신앙생활의 체험으로 “우리가 그 영광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크리스마스의 사건을 생각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말은 “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보다”는 단어는 아주 중요한 단어입니다. 천사가 목자들에게 나타나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눅2:12) 라고 말하고 목자는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룩2:15) 라고 말합니다. 시므온은 아기를 안고 말합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눅2:30) 라고.
현대를 사는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본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의 곳곳에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니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복음서를 읽고 이 역사 속에서 걸어가신 그리스도를 알게 된다.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 보편, 무한한 영으로 계시는 하나님을 인간은 육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다면, “너희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요한복음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설교 제목을 “크리스마스의 기쁨”이라고 하였습니다만, 크리스마스의 기쁨은 하나님을 보는 기쁨입니다. 요한이 예수님을 가까이 접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본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6절입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16절)
요한이 자신의 신앙의 그 생애를 되돌아보며 감사하는 말입니다. 신앙을 가지고 걷는 자의 여로는 결코 평온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에 들어가는 것은 이 세상적인 의미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운 일은 여전히 계속됩니다. 경제적인 고통을 만날 수도, 병에 걸릴 수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자의 생애는 “은혜에 잇는 은혜”의 생애라고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은혜 위에 더 새로운 은혜가 쌓이고, 잇따라 은혜가 쌓입니다. 혹은 그 때, 그 기도에 가장 적절한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믿은 자의 삶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긴 신앙의 걸음을 거쳐 요한은 깊은 감사와 기쁨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결정적인 굉장함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하나님이 임마누엘(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다)의 하나님이라는 것. 구유에 뉘어 있는 모습은 가난하게 된 사람들의 하나님이 되셨다는 것. 이방인, 이교인이라 할지라도 별과 같은 무언가의 표적을 주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만나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 이 하나님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문자 그대로“보이는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복음서를 읽고 거기에 기록된 예수님의 모습을 아는 것은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하나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다가와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품에 기대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과 깊은 교제 속에 계십니다.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과 그 품에 기대어 있는 독생자이신 하나님 사이에 있는 깊은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그 독생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와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가가면서 아버지 하나님과의 교제 안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독생자 예수님과의 깊은 사랑의 교제 안에 “당신도 초대받고 있다. 자 이 교제 안에 들어가라”라고 불러 주시는 것입니다.
어드벤트에 들어와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계속 읽어 왔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아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부디 살아 계시는 참된 하나님을 구유에 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동방 박사들이 보배합을 열었듯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당신의 마음을 내밀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 위에, 은혜 위에 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 2022年 12月 25日 子どもメッセージ】
「クリスマスの馬小屋」 ルカ2章 1~8節
今日はイエスさまの誕生日、クリスマスです。
ところで、皆さん、イエスさまはどこでお生まれになったでしょうか?
そうです。馬小屋です。正確には、家畜小屋です。馬は軍隊に使われるもので、普通に人が持っているものではなかったようです。恐らく、ロバか牛が飼われていた場所だと思います。他にも羊や山羊、鶏などがいたかも知れません。
暗くて、寒くて、汚い家畜小屋です。とても赤ちゃんを産むことのできるような場所ではありません。じゃ、どうして、イエスさまは馬小屋で産まれたのでしょうか? 聖書には、「宿屋には彼らの場所がなかったからである」(ルカ2:7)とあります。
お腹の大きなマリアさんを見ても、誰一人わたしの家に泊まってと言わなかったんですね。赤ちゃんイエス様がお生まれになるのに、誰一人暖かなお家へどうぞとは言いませんでした。長い旅を続けてきたマリアとヨセフ、そしてイエス様を暖かく迎えてくれる人はどこにもいませんでした。
これを人間の罪といいます。自分は暖かいお家で、美味しいものを食べて、ゆっくりとフワフワのベッドで寝れたら、それでいい。「どこの誰か判らないあの若いお腹の大きな二人連れのことなんて知らないよ」そんなふうに思ってしまう人間の冷たい心、それがベツレヘムの家畜小屋には見えてきます。クリスマスの家畜小屋を見つめるときに、わたしたちが気付くことというのは、決して人間の暖かな心とか、美しい光景ではありません。自分のことばかり考える人間の罪、イエス様をお迎えすることをしない人間の罪の姿が、見えてきます。
そして、あんな寒い、赤ちゃんを産むのはとても危険な家畜小屋にいるマリアとヨセフを、そしてイエス様を、何とも思わない人間の罪、そのような冷たい人間の罪が見えてきます。
でも、そこにイエス様はお生まれになりました。そういう人間の罪、冷たさ、人のことを何とも思わない自分中心的な心、まして神様の御子イエス様をお迎えする気持ちなんてどこにもない、そういう人間の罪の只中に、イエス様はお生まれになったのです。そこにこそ、救い主のお誕生が必要だったからです。
決して綺麗ではない馬小屋ですけれど、でも、そこにイエス様が生まれてくださることによって、馬小屋はパッと明るくなります。喜びが溢れてきます。
それは、馬小屋が立派だからでも、綺麗だからでもありません。そこにイエス様がいてくださるから、馬小屋は明るく照らされるのです。
わたしたちの心は、それはこの馬小屋のようなものです。それは決して立派な、暖かい、綺麗な馬小屋ではありません。気がつくといつのまにか隣にいるあの人この人のことよりも自分のことばかり考えている。気がつくと、神様にお従いすることよりも、自分の願いのままに神様を振り回そうとしたりする、そんな心の馬小屋です。でも、そこにイエス様は生まれたいと望んでくださったのです。そして、わたしたちの心の馬小屋にイエス様は生まれてくださるのです。わたしたちはみんな、イエス様のお誕生が必要です。わたしたちの暗く、冷たい、そして汚い馬小屋が明るくなるためには、イエス様が生まれてくださらなければいけません。
人間は自分で自分の心を照らすことは出来ません。人間は自分で自分を救うことはできません。イエス様をわたしたちみんなが、心の中にお迎えして、クリスマスをこころからお祝いしたいと思います。
【 2022年 12月 25日 主日礼拝説教】
「神を見る喜び」 ヨハネ 1章 14~18節
皆さん、メリークリスマス。クリスマス、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今日、与えられた御言葉は、ヨハネによる福音書1章の御言葉ですが、ヨハネによる福音書には、クリスマス物語は記録されておりません。しかし、クリスマス物語に一貫して語られております夜の暗闇の中に光輝く救い主イエス・キリストのことが語られております。
1章1節「初めに言があった。」(1:1) 1章4節「言の内に命があった。命は人間を照らす光であった。光は暗闇の中で輝いている。暗闇は光を理解しなかった。」(1:4-5) そして、今日の御言葉でである14節です。「言は肉となって、私たちの間に宿られた。わたしたちはその栄光を見た。それは父の独り子としての栄光であって、恵みと真理とに満ちていた。」(14節)
ヨハネによる福音書は他の福音書より遅れて、紀元1世紀末頃に記されたものです。教会にはイエスさまのことを直接見た者がほとんどいなくなった時代でした。それでも、ヨハネは自らの長い信仰生活の体験として「わたしたちはその栄光を見た」と語ります。
クリスマスの出来事を考える上でとても大事な言葉は「見る」ということです。福音書の中では、「見る」という言葉は大変重要な言葉です。天使が羊飼いたちに現れて「あなたがたは、布にくるまって飼い葉桶の中に寝ている乳飲み子を見つけるであろう」(ルカ2:12)と語り、羊飼いは「さあ、ベツレヘムへ行こう。主が知らせてくださったその出来事を見ようではないか」(ルカ2:15)と言います。シメオンは幼子を抱いて言います。「わたしはこの目であなたの救いを見たからです」(ルカ2:30)と。
現代を生きる私たちは、神さまを見ることは出来ません。見た者もいません。しかし、この聖書の個所には、神さまを見ることが出来ると記されております。イエス・キリストを知り、イエス・キリストを見たら、神さまを見たのだと記しています。それはどういうことかと言いますと、福音書を読み、この歴史の中を歩まれたキリストを知る。すると、それは神さまを見たことなのだと記しているのです。
永遠、普遍、無限の霊にいます神さまを、人間は肉眼をもって見ることは出来ません。しかし、見ることが出来るのです。主イエス・キリストを見たら、キリストを知ったなら、「あなたは神さまを見た」と言えるのだと、ヨハネによる福音書は記しているのです。
説教題を「クリスマスの喜び」としましたが、クリスマスの喜びは、神さまを見る喜びなのです。ヨハネがイエスさまに身近に接して、キリストにおいて見た神さまの恵みがどんなにすばらしいものであるかを述べています。16節です。「わたしたちは皆、この方の満ち溢れる豊かさの中から、恵みの上に、更に恵みを受けた。」(16節)
ヨハネが自分の信仰のその生涯を振り返りながら感謝している言葉です。信仰をもって歩む者の旅路は決して平穏なものではありません。キリスト教信仰に入ることはこの世的な意味で幸福になることではありません。苦しいことは相変わらず続きます。経済的な苦しみに会うことも、病に冒されることも、愛する者との別れも経験します。
しかし、キリストを信じる者の生涯は「恵みにつぐ恵み」の生涯であると、ヨハネは語っているのです。
一つの恵みの上に、さらに新しい恵みが積み上げられ、次々に恵みが積み上げられる。あるいは、その時、その折りに、最も適切な恵みが与えられることでもある。これがキリストを信じた者の生活なのだと言っているのです。長い信仰の歩みを経て、ヨハネは深い感謝と喜びをもって語っております。
主イエス・キリストの決定的なすばらしさというのは、イエスさまを通して、神さまを見せてくださったことです。福音書に記されておりますクリスマス物語は、神さまがインマヌエル(神は我々と共にいて下さる)の神さまであるということ。飼い葉桶に寝かされているお姿は、貧しくされた者の神さまであること。異邦人、異教の人々であったとしても、星などの何かのしるしを与え、それを通して、神さまを探し求めるものは、出会ってくださる神さまであるということ。この神さまをイエスさまは私たちに見せてくださったのです。文字通り「見える神」となられたのです。
福音書を読み、そこに記されているイエスさまのお姿を知ることは、神さまを見ることです。このイエスさまにおいて見る神さまのお姿は、私たちに寄り添ってくださる神さまです。ヨハネによる福音書1章に記されているのは、イエスさまが父なる神さまのふところに寄り添っているような神さまとの深い交わりの中におられます。それは父なる神さまとその胸に寄り添う独り子なる神さまとの間にある深い愛の関係なのです。そして、その御子なるイエスさまが私たちに寄り添ってくださいます。
イエスさまは私たちに寄り添いながら、父なる神さまとの交わりの中に導き入れてくださるのです。父なる神さまと御子イエスさまとの深い愛の交わりの中に、あなたも招かれているのだ、さあ、この交わりの中に入りなさい、と呼びかけてくださっているのです。
アドベントに入り、クリスマス物語を読み続けてきましたが、皆さんは神さまの御子であるイエスさまのことを知ったと思います。イエスさまのことを知ったならば、それは神さまを見たのです。それがどれほどの喜びでしょうか。だからこそ、私たちはクリスマス礼拝を献げるのです。
どうか、皆さまも、生けるまことの神さまを、飼い葉桶に眠るイエス・キリストを通して見て下さい。そして、東方の博士たちが宝の箱を開いたように、ありのままの姿で、あなたの心を差し出してください。神さまは、その者の上に恵みの上に、更に恵みを与えてくださいます。
【2022년 12월 25일 주일예배】
“하나님을 보는 기쁨” 요한복음 1장 14~18절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축하드립니다.
오늘 주어진 말씀은 요한복음 1장입니다만, 요한복음에는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이야기에 일관되게 회자되고 있는, 밤의 어둠 속에 빛나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장 1절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1:1) 1장 4절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1:4-5) 그리고 오늘의 말씀인 14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4절)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보다 늦게, 기원 1세기 말 무렵에 기록된 것입니다. 교회에는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이 거의 없어진 시대였습니다. 그런데도 요한은 자신의 오랜 신앙생활의 체험으로 “우리가 그 영광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크리스마스의 사건을 생각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말은 “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보다”는 단어는 아주 중요한 단어입니다. 천사가 목자들에게 나타나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눅2:12) 라고 말하고 목자는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룩2:15) 라고 말합니다. 시므온은 아기를 안고 말합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눅2:30) 라고.
현대를 사는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본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의 곳곳에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니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복음서를 읽고 이 역사 속에서 걸어가신 그리스도를 알게 된다.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 보편, 무한한 영으로 계시는 하나님을 인간은 육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다면, “너희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요한복음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설교 제목을 “크리스마스의 기쁨”이라고 하였습니다만, 크리스마스의 기쁨은 하나님을 보는 기쁨입니다. 요한이 예수님을 가까이 접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본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6절입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16절)
요한이 자신의 신앙의 그 생애를 되돌아보며 감사하는 말입니다. 신앙을 가지고 걷는 자의 여로는 결코 평온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에 들어가는 것은 이 세상적인 의미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운 일은 여전히 계속됩니다. 경제적인 고통을 만날 수도, 병에 걸릴 수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자의 생애는 “은혜에 잇는 은혜”의 생애라고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은혜 위에 더 새로운 은혜가 쌓이고, 잇따라 은혜가 쌓입니다. 혹은 그 때, 그 기도에 가장 적절한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믿은 자의 삶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긴 신앙의 걸음을 거쳐 요한은 깊은 감사와 기쁨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결정적인 굉장함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하나님이 임마누엘(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다)의 하나님이라는 것. 구유에 뉘어 있는 모습은 가난하게 된 사람들의 하나님이 되셨다는 것. 이방인, 이교인이라 할지라도 별과 같은 무언가의 표적을 주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만나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 이 하나님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문자 그대로“보이는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복음서를 읽고 거기에 기록된 예수님의 모습을 아는 것은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하나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다가와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품에 기대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과 깊은 교제 속에 계십니다.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과 그 품에 기대어 있는 독생자이신 하나님 사이에 있는 깊은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그 독생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와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가가면서 아버지 하나님과의 교제 안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독생자 예수님과의 깊은 사랑의 교제 안에 “당신도 초대받고 있다. 자 이 교제 안에 들어가라”라고 불러 주시는 것입니다.
어드벤트에 들어와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계속 읽어 왔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아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부디 살아 계시는 참된 하나님을 구유에 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동방 박사들이 보배합을 열었듯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당신의 마음을 내밀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 위에, 은혜 위에 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