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도 드디어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의 마지막에 다시 한번 이 편지를 쓴 이유와 자기 소개를 적고 있습니다.
먼저 이 편지를 쓴 이유는 세계의 중심인 로마를 방문하고 싶다는 것과 로마 앞에 위치한 에스파냐(스페인)를 방문하여 선교 활동을 하고 싶은 염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 교회에 대한 인사로 바울은 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는 인사만에 그치지 않고 꽤 깊은 신학적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로마 교회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한테서 이러한 편지가 갑자기 날라오니까 도대체 무슨 일일까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5절에서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제로서 14절에서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14절) 고 했습니다.
바울은 면식은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로마 교회의 사람들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그 신뢰 때문에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다” 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아무리 대전도자인 바울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대담한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로마 교회는 바울이 전도해서 생긴 교회가 아닙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복음이 전해졌고, 확실히 거기에 교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면식도 없고 아직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거기에는 분명 교회가 있었고, 주 안에서 맺어진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물론 인간의 모임인 이상, 예를 들면 고린도 교회와 같은 현실적인 갈등이나 문제는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고린도 교회든 로마 교회든 거기에는 그리스도로 맺어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단지 그것만으로 바울은 신뢰했고 확신을 가지고 말했습니다. 로마 교회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맺어진 사람들이라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그 신뢰 때문에 바울은 자신의 사명에 관해서도 변명적인 표현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어조로 말하고 있습니다. 즉 자기 소개로서 자신의 프로필을 간결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16절입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16절).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이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방인이 살아 계신 진정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8절과 19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18-19절) 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목숨을 건 전도 여행의 족적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고 하며 그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셨던 것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복음의 세계 선교의 문을 연 전도자이며, 이만큼 복음 선교를 섬긴 신앙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공적에 대해서는 하나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20절에서는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20절) 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주어진 복음 선교의 역할이 개척 전도라고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고전 3:10, 11 참조)
그러나 바울은 이 개척 전도를 결코 자신의 형편이나 기호에 따라 했던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21절, 이사야 52:15 참조) 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말씀에 따라 개척 전도에 종사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 중에서 자신의 프로필로 소개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바울의 다른 편지에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의 프로필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3:5-6) 는 표현들입니다.
그러나 이 프로필은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인해 파탄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빌3:7) 라고 한 것처럼 이미 바울에게는 그리스도와 무관한 프로필은 아무 의미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빌릴보서 2장 6~8절에 “그는(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 세상적인 가치관으로는 자랑할 수 있었던 모든 경력은 이 그리스도의 프로필로 인하여 모두 다 무의미한 것으로 뒤바꿔져 버린 것입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에 있는 바울의 프로필 속에는 이 세속적인 명예 등은 한마디도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경력은 힘차고 자신으로 가득차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잘 보면 반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칭송하는 표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계속되는 16절에서는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또한 17절에서는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18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이라고 하여, 철저하게 바울의 복음 선교와 생애 전체의 주역이 하나님이셨다는 것이 여기서 증언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프로필에 어느 정도 하나님이 등장할까요? 떠올려 주셨으면 합니다. 생애를 마칠 때, 우리가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볼 때 생각나는 것이 그리스도의 역사였다고 말할 수 있는 신앙자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도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자신의 인생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하게 하려고”(15절) 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의 프로필에는 주님의 십자가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2022年11月6日 主日礼拝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フィリピ(빌립보서) 2章 6~8節
〇讃 頌 讃頌歌 518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聖書奉読 ローマの信徒への手紙(로마서) 15章 14~21節
〇説 教 「私たちのプロフィール(우리의 프로필)」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455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報 告
〇頌 栄 讃頌歌 3
〇祝 祷
【 2022年 11月 6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私たちのプロフィール」 ローマ書15書14~21節
ローマの信徒への手紙もいよいよ終わりにさしかかって来ました。パウロはこの手紙の最後に改めて、この手紙を書いた理由と自己紹介を記しています。
まず、この手紙を書いた理由としては、世界の中心であるローマを訪問したいと言うこととし、その先のイスパニア(スペイン)に訪問し宣教活動を行いたいと願っていたからです。ですから、ローマ教会への挨拶としてパウロはこの手紙を書いております。
ただ、この手紙は、挨拶だけにとどまらず、かなり濃い神学的な内容が記されています。ローマ教会の人々にとっては、何の面識のない人からこのような手紙がいきなり送りつけられてきたわけですから、いったい何事かと思ったことでしょう。
ですから、パウロは15節で「この手紙ではところどころかなり思い切って書きました」と語っているのです。そして、その前提として14節で「兄弟たち、あなたがた自身は善意に満ち、あらゆる知識で満たされ、互いに戒め合うことができると、このわたしは確信しています。」(14節)と語っています。
パウロは、面識はないけれど、キリストにあって、ローマ教会の人々を信頼していたのです。その信頼のゆえに「ところどころ思い切ったことを書いた」のだと言っているのです。相手への信頼がなければ、大伝道者のパウロであったとしても、このように思い切ったことは言えないのです。
ローマ教会はパウロが伝道して出来た教会ではありません。すでに誰かによって福音が宣べ伝えられ、確かにそこに教会があったのです。面識もないまだ見たことのない人々であっても、そこには確かに教会があり、主に結ばれた共同体がある、もちろん人間の集まりである以上、たとえばコリントの教会のような現実的な揉め事や問題はあったかもしれません。しかしそれでもなお、コリントであれローマであれ、そこにキリストに結ばれた人々がいる、ただそのことにおいて、パウロは信頼し、確信して語っているのです。ローマ教会の人々が主イエス・キリストにあって結ばれた人々であるという事実からなのです。
その信頼のゆえに、パウロは自分の使命に関しても弁明的な表現ではなく、自然な口調で語っています。つまり自己紹介として、自分のプロフィールを簡潔に語っています。それが15節です。「それは、わたしが神から恵みをいただいて、異邦人のためにキリスト・イエスに仕える者となり、神の福音のために祭司の役を務めているからです。」(15~16節)
パウロは、異邦人のための使徒でありました。そして、その目的が、「異邦人が、聖霊によって聖なるものとされた、神に喜ばれる供え物となる」ということです。簡単に言えば、異邦人が生ける真の神さまを礼拝するようになるということです。
18節19節には、「キリストがわたしを通して働かれたこと以外は、あえて何も申しません。キリストは異邦人を神に従わせるために、わたしの言葉と行いを通して、また、しるしや奇跡の力、神の霊の力によって働かれました。こうしてわたしは、エルサレムからイリリコン州まで巡って、キリストの福音をあまねく宣べ伝えました。」(18-19節)とあります。これは、パウロの命を賭けた伝道旅行の足跡です。しかし、パウロは、「キリストがわたしを通して働かれたこと以外は、あえて何も申しません」、とその全てが、キリストの働きであったことを証言しているのです。パウロは、キリストの福音の世界宣教の扉を開いた伝道者であり、これほど福音宣教に仕えた信仰者はおりません。しかし、彼自身の功績は、一つも語らないのです。
20節には「このようにキリストの名がまだ知られていない所で福音を告げ知らせようと、わたしは熱心に努めてきました。それは、他人の築いた土台の上に建てたりしないためです。」(20節)とあります。パウロは自分に与えられた福音宣教の役割が、開拓伝道であったと理解していたということです(Ⅰコリ3:10、11参照)。
しかし、パウロは、この開拓伝道を、決して自分の都合や好みでしていたわけではありません。パウロはイザヤ書の御言葉を引用しながら、「『彼のことを告げられていなかった人々が見、聞かなかった人々が悟るであろう』と書いてあるとおりです。」(21節, イザヤ52:15参照)と言っています。パウロはこの御言葉に従って開拓伝道に従事しているのだと主張しているのです。
これがローマ教会に宛てた手紙の中で、自分のプロフィールとして紹介している内容です。パウロの他の手紙には、キリストと出会う以前のプロフィールも記されています。例えば、「わたしは生まれて八日目に割礼を受け、イスラエルの民に属し、ベニヤミン族の出身で、ヘブライ人の中のヘブライ人です。律法に関してはファリサイ派の一員、熱心さの点では教会の迫害者、律法の義については非のうちどころのない者でした。」(フィリピ3:5-6)とかですね。
しかし、このプロフィールはキリストとの出会いによって破綻してしまったのです。「しかし、わたしにとって有利であったこれらのことを、キリストのゆえに損失と見なすようになったのです。」(フィリピ3:7)とありますように、もはやパウロにとってキリストと無関係なプロフィールは、何の意味も持たなくなったのです。
フィリピの信徒への手紙2章6~8節に「キリストは、神の身分でありながら、神と等しい者であることに固執しようとは思わず、かえって自分を無にして、僕の身分になり、人間と同じ者になられました。人間の姿で現れ、へりくだって、死に至るまで、それも十字架の死に至るまで従順でした。」(フィリピ2:6-8)とあります。
パウロが、この世的な価値観では誇り得た全ての経歴は、このキリストのプロフィールによってことごとく無意味なものに変えられたのです。
今日の御言葉にありますパウロのプロフィールの中には、この世的な誉れなど一言も見当たりません。しかし、この経歴は、力強く、自信に満ち溢れています。よく見ると繰り返し、神さまの御業を讃える表現を見つけることが出来ます。15節では、「神から恵みをいただいて」続く16節「神の福音のために」、さらに、17節「神のために働く」、18節「キリストがわたしを通して働かれた」、と徹底的にパウロの福音宣教と生涯全体の主役が神さまであったことがここで示されているのです。
皆さん、私たちのプロフィールにどれだけ神さまが登場するでしょうか。思い浮かべていただきたいのです。生涯を終える時、振り返って思い出すことが、キリストの御業であったと言える信仰者は幸いです。
私たちもまた、主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の贖いによって罪赦された者です。主の愛によって、新たな自分の人生を歩み始めました。「記憶を新たにしてもらおうと」(15節)、とパウロは言っています。私たちのプロフィールには主の十字架が燦然と輝いているのです。
皆さん、これからの私たちのプロフィールに、常にこのキリストの十字架が記されますことを願います。
【2022년 11월 6일 주일예배(요약판)】
“우리의 프로필” 로마서 15장 14~21절
로마서도 드디어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의 마지막에 다시 한번 이 편지를 쓴 이유와 자기 소개를 적고 있습니다.
먼저 이 편지를 쓴 이유는 세계의 중심인 로마를 방문하고 싶다는 것과 로마 앞에 위치한 에스파냐(스페인)를 방문하여 선교 활동을 하고 싶은 염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 교회에 대한 인사로 바울은 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는 인사만에 그치지 않고 꽤 깊은 신학적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로마 교회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한테서 이러한 편지가 갑자기 날라오니까 도대체 무슨 일일까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5절에서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제로서 14절에서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14절) 고 했습니다.
바울은 면식은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로마 교회의 사람들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그 신뢰 때문에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다” 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아무리 대전도자인 바울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대담한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로마 교회는 바울이 전도해서 생긴 교회가 아닙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복음이 전해졌고, 확실히 거기에 교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면식도 없고 아직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거기에는 분명 교회가 있었고, 주 안에서 맺어진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물론 인간의 모임인 이상, 예를 들면 고린도 교회와 같은 현실적인 갈등이나 문제는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고린도 교회든 로마 교회든 거기에는 그리스도로 맺어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단지 그것만으로 바울은 신뢰했고 확신을 가지고 말했습니다. 로마 교회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맺어진 사람들이라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그 신뢰 때문에 바울은 자신의 사명에 관해서도 변명적인 표현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어조로 말하고 있습니다. 즉 자기 소개로서 자신의 프로필을 간결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16절입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16절).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이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방인이 살아 계신 진정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8절과 19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18-19절) 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목숨을 건 전도 여행의 족적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고 하며 그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셨던 것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복음의 세계 선교의 문을 연 전도자이며, 이만큼 복음 선교를 섬긴 신앙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공적에 대해서는 하나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20절에서는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20절) 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주어진 복음 선교의 역할이 개척 전도라고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고전 3:10, 11 참조)
그러나 바울은 이 개척 전도를 결코 자신의 형편이나 기호에 따라 했던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21절, 이사야 52:15 참조) 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말씀에 따라 개척 전도에 종사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 중에서 자신의 프로필로 소개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바울의 다른 편지에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의 프로필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3:5-6) 는 표현들입니다.
그러나 이 프로필은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인해 파탄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빌3:7) 라고 한 것처럼 이미 바울에게는 그리스도와 무관한 프로필은 아무 의미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빌릴보서 2장 6~8절에 “그는(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 세상적인 가치관으로는 자랑할 수 있었던 모든 경력은 이 그리스도의 프로필로 인하여 모두 다 무의미한 것으로 뒤바꿔져 버린 것입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에 있는 바울의 프로필 속에는 이 세속적인 명예 등은 한마디도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경력은 힘차고 자신으로 가득차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잘 보면 반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칭송하는 표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계속되는 16절에서는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또한 17절에서는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18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이라고 하여, 철저하게 바울의 복음 선교와 생애 전체의 주역이 하나님이셨다는 것이 여기서 증언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프로필에 어느 정도 하나님이 등장할까요? 떠올려 주셨으면 합니다. 생애를 마칠 때, 우리가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볼 때 생각나는 것이 그리스도의 역사였다고 말할 수 있는 신앙자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도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자신의 인생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하게 하려고”(15절) 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의 프로필에는 주님의 십자가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앞으로의 우리의 프로필에 항상 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기록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