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는 반대로 가나안 땅을 떠나 하란 땅으로 향했습니다. 야곱과 아브라함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공통점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차이점은 야곱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떠난 여행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형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축복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어머니 리브가의 계략 대로 아버지를 속여 에서에게서 축복을 빼앗던 것입니다. 야곱의 이름은 밀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는 그 이름이 나타내는 대로 무리한 방법으로 에서로 가장하여 에서를 밀쳐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싶다. 그의 동기, 소원은 옳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때와 방법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본문 11절에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자더니”라고 쓰여 있습니다. 야곱은 그 곳에 있던 돌을 베개로 삼고 잤습니다. 그러자 꿈 속에서 하늘에서 땅으로 계단이 뻗어 하나님의 사자가 그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곁에 계셔서 말을 걸어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 곳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집”, 지금이라면 “교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곳”이란 벧엘, 하나님의 집, 교회를 말합니다. 야곱이 돌을 베개로 삼고 잔 것 같이 교회는 안식을 얻는 장소입니다. 설교 중에 자도 괜찮습니다. 단지, 잠 중에서 꿈을 꾸거나 환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영의 눈이 열려 지금도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듣는 장소입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을 깨닫는 장소이며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약속을 믿고, 여행을 떠나고, 다시 돌아오는 장소입니다.
야곱은 “한 곳”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13-14절)
이 약속은 야곱에게 주어진 새 언약이 아닙니다. 야곱의 조부, 신앙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언약입니다.
이렇게 성경을 읽으면서 세계의 역사를 보면 이 아브라함에 대한 약속, 야곱에 대한 약속이 실현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셀 수 없을 만큼 전세계에 있고 이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방인인 우리도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고 야곱에게 말씀하신 주님의 약속은 우리에 대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15절)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야곱아, 잘 보아라. 잘 들으라. “나는 당신과 함께 있다”고. 주님께서는 어디에 가든지 너를 지켜 이끌어 주시고 떠나지 않으신다 라고 야곱은 면전에서 주님으로부터 직접 이 은혜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야곱은 이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약속에 응답하여 서약하고 여행을 계속해 갑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야곱에게 말씀하셨고 이제는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15절)
이 약속은 우리에게도 주어지고 있습니다. 74년 전 이 교회가 시작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고 지키고 인도하여 주시기 때문에 지금 히로시마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은 진실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함께 계셔서 “한 곳”에 우리를 돌아오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약속은 진실합니다. 이것은 나의 인생에도 또 이 교회의 행보에 있어서도 주님의 약속의 확실함이 증명되고 앞으로도 계속 밝혀져 나갈 것입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16절)
야곱은 잠이 깨어서 정직하게 고백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라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우리는 모를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장소에 계시는데 깨닫지 못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한 곳 ”에서 알았습니다. 야곱은 “한 곳”에서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함께 계셨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 곁에서 안식하고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을 깨닫는 장소입니다. 오랜만에 예배에 오신 분들이 예배 후에 “교회에 와서 안심이 된다 ”고 말씀하시는 것을 자주 듣습니다. 틀림없이 교회는 안심하고, 안식하며 주님의 팔에 안겨 자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꿈과 환상을 보는 장소이며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을 깨닫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주님을 경외하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17절입니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교회는 주님을 경외하면서 신앙을 고백하고 예배를 드리는 장소입니다. 바로 교회는 하나님 집이며 하늘이 열린 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의 문입니다. 이 문을 통하여 구원을 체험하고, 주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넘치는 은혜와 축복이 쏟아지는 장소입니다. 그곳이 벧엘, 하나님의 집입니다.
우리 교회도 75년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하늘의 문이 열리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역사가 일어나서 좀더 하나님을 우러러보는 교회이기를 원합니다.
이번 주도 주님의 약속을 마음에 새기며 야곱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2022年7月3日 主日礼拝式順・説教
― 創立74周年記念主日礼拝 ―
〇黙 祷
〇招 詞 創世記(창세기) 13章 14~16節
〇讃 頌 讃頌歌 67(全節)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聖書奉読 創世記(창세기) 28章 10~22節
〇説 教 「ベテルの神の家(벧엘의 하나님 집)」
〇祈 祷
〇聖 礼 典 聖餐式
〇讃 頌 讃頌歌 490(全節)
〇献 金
〇報 告
〇感謝祈祷
〇頌 栄 讃頌歌 3
〇祝 祷
【 2022年 7月 3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ベテルの神の家」 創世記 28章 10~22節
「ヤコブはベエル・シェバを立ってハランへ向かった。」(10節)
ヤコブは、祖父アブラハムとは逆に、カナンを旅立ち、ハランに向かいました。ヤコブとアブラハムには、共通点と相違点があります。共通点は、神さまの祝福を受けた、という点です。そして、相違点は、ヤコブは主の御言葉を聞いての旅立ちでなかったことです。
ヤコブは神さまの祝福が約束されていました。神さまは兄のエサウではなく、ヤコブを祝福すると言われていたのです。しかし、ヤコブは、神さまの時を待つことができず、母に唆され、父を欺き、エサウから祝福を奪い取ったのです。ヤコブの名は、押しのける者という意味です。彼は、その名が示すとおり、強引なやり方で、エサウになりすまし、エサウを押しのけ、祝福を奪い取ったのです。
神さまの祝福に与りたい。彼の動機、願いは正しいのかもしれません。しかし、その時と方法は間違っていたのです。
11節に「とある場所に来たとき、日が沈んだので、そこで一夜を過ごすことにした」とあります。ヤコブはその場所にあった石を枕にして眠りました。すると、夢の中で、天から地に階段が伸びて、天使が、その階段を上り下りしているのを見たのです。そして、目を覚ましたら、神さまが傍らにいて、語りかけて来たというのです。それで、ヤコブはこの場所を「ベテル(神の家)」と名付けました。「神の家」、今でしたら「教会」と言うことです。
皆さん、「とある場所」とは、ベテル、神の家、教会のことです。ヤコブが石を枕に眠ったように、教会は、安息を得る場所です。説教中に眠っても構いません。ただ、眠りの中で夢を幻を見て頂きたいと思います。教会は、霊の目が開かれ、今も生きて働いている神さまの御業を見聞きする場所です。教会は、主が共におられることに気づく場所であり、主の言葉を聞いて、主の約束を信じて、旅立ち、再び、帰ってくる場所なのです。
ヤコブは「とある場所」で主の言葉を聞いたのです。「見よ、主が傍らに立って言われた。『わたしは、あなたの父祖アブラハムの神、イサクの神、主である。あなたが今横たわっているこの土地を、あなたとあなたの子孫に与える。あなたの子孫は大地の砂粒のように多くなり、西へ、東へ、北へ、南へと広がっていくであろう。地上の氏族はすべて、あなたとあなたの子孫によって祝福に入る。』」(13-14節)
この約束は、ヤコブに与えられた新しい約束ではありません。ヤコブの祖父、信仰の父であるアブラハムに約束された言葉です。
こうして聖書を読みながら、世界の歴史を見ると、このアブラハムへの約束、ヤコブへの約束が実現していることが良く分かります。アブラハムの子孫は、数えきれないほど世界中にいて、今やキリストを通し、異邦人である私たちもアブラハムの祝福を受け、ヤコブに語られた主の約束は、私たちに対する約束でもあるのです。
「見よ、わたしはあなたと共にいる。あなたがどこへ行っても、わたしはあなたを守り、必ずこの土地に連れ帰る。わたしは、あなたに約束したことを果たすまで決して見捨てない。」(15節)
「見よ、わたしはあなたと共にいる。」ヤコブよ。よく見なさい。よく聞きなさい。「わたしはあなたと共にいる」と。主は、どこに行っても、あなたを守り、導き、見捨てない、と。ヤコブは、面と向かって、主から直接、この恵みの言葉を聞いたのです。
ヤコブは、この約束を信じました。そして、主の約束に応答し、誓約し、旅を続けていくのです。「見よ、わたしはあなたと共にいる。」神さまはこの約束をヤコブに語り、今、キリストを信じた私たちにも、語られているのです。
「見よ、わたしはあなたと共にいる。あなたがどこへ行っても、わたしはあなたを守り、必ずこの土地に連れ帰る。わたしは、あなたに約束したことを果たすまで決して見捨てない。」(15節)
この約束は、私たちにも与えられているのです。74年前、この教会が始まった時も同じです。主は、私たちと共にいて、守り、導き、今の教会があるのです。主の約束は真実です。主はいつも共にいて、「とある場所」に連れ帰ってくださるお方です。
主の約束は真実です。これは、私の人生でも、また、この教会の歩みにおいても、主の約束の確かさが証明され、これからも証され続けていくことでしょう。
「ヤコブは眠りから覚めて言った。『まことに主がこの場所におられるのに、わたしは知らなかった。』」(16節)
ヤコブは、眠り覚めると、正直に告白します。「主がこの場所におられるのに、わたしは知らなかった」と。
主が共におられるのに、私たちは知らないことがあるのです。主がこの場所におられるのに、気づかないことがあるのです。しかし、ヤコブは「とある場所」で知ったのです。ヤコブは「とある場所」で気づいたのです。それは、主が共におられた、ということです。これからも主が共におられる、ということです。
教会は、主のもとで安息し、主が共におられることに気づく場所です。久しぶりに礼拝に来られた人が、礼拝後、「教会に来てホッとしました」と言うのを良く聞きます。確かに、教会は、ホッと安息し、主の御腕に抱かれ、眠る場所なのだと思います。夢と幻を見る場所であり、主の言葉を聞き、主が共におられることに気づく場所です。
そして、ヤコブは、主を畏れ、こう告白しました。17節です。「そして、恐れおののいて言った。『ここは、なんと畏れ多い場所だろう。これはまさしく神の家である。そうだ、ここは天の門だ。』」
教会は、主を畏れ、信仰を告白し、礼拝を捧げる場所です。まさに、教会は、神の家であり、天が開かれた門なのです。イエス・キリストは救いの門です。この門を通じて、救いを体験し、主の御業を体験し、あふれるばかりの恵みと祝福が降り注ぐ場所。それがベテル、神の家なのです。
私たちの教会も75年目に入ります。天の門が開かれ、今も生きて働かれる主の御業が起こされ、もっともっと御名を崇めさせていただく教会であり続けたい、と願います。
今週も主の約束を心に刻み付け、ヤコブの告白が、私たちの告白となって、神の祝福を携えて、帰ってくることができますよう、お祈り致します。
【2022년 7월 3일 주일예배(요약판)】
“벧엘의 하나님 집” 창세기 28장 10~22절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10절)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는 반대로 가나안 땅을 떠나 하란 땅으로 향했습니다. 야곱과 아브라함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공통점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차이점은 야곱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떠난 여행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형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축복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어머니 리브가의 계략 대로 아버지를 속여 에서에게서 축복을 빼앗던 것입니다. 야곱의 이름은 밀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는 그 이름이 나타내는 대로 무리한 방법으로 에서로 가장하여 에서를 밀쳐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싶다. 그의 동기, 소원은 옳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때와 방법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본문 11절에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자더니”라고 쓰여 있습니다. 야곱은 그 곳에 있던 돌을 베개로 삼고 잤습니다. 그러자 꿈 속에서 하늘에서 땅으로 계단이 뻗어 하나님의 사자가 그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곁에 계셔서 말을 걸어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 곳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집”, 지금이라면 “교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곳”이란 벧엘, 하나님의 집, 교회를 말합니다. 야곱이 돌을 베개로 삼고 잔 것 같이 교회는 안식을 얻는 장소입니다. 설교 중에 자도 괜찮습니다. 단지, 잠 중에서 꿈을 꾸거나 환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영의 눈이 열려 지금도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듣는 장소입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을 깨닫는 장소이며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약속을 믿고, 여행을 떠나고, 다시 돌아오는 장소입니다.
야곱은 “한 곳”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13-14절)
이 약속은 야곱에게 주어진 새 언약이 아닙니다. 야곱의 조부, 신앙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언약입니다.
이렇게 성경을 읽으면서 세계의 역사를 보면 이 아브라함에 대한 약속, 야곱에 대한 약속이 실현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셀 수 없을 만큼 전세계에 있고 이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방인인 우리도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고 야곱에게 말씀하신 주님의 약속은 우리에 대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15절)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야곱아, 잘 보아라. 잘 들으라. “나는 당신과 함께 있다”고. 주님께서는 어디에 가든지 너를 지켜 이끌어 주시고 떠나지 않으신다 라고 야곱은 면전에서 주님으로부터 직접 이 은혜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야곱은 이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약속에 응답하여 서약하고 여행을 계속해 갑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야곱에게 말씀하셨고 이제는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15절)
이 약속은 우리에게도 주어지고 있습니다. 74년 전 이 교회가 시작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고 지키고 인도하여 주시기 때문에 지금 히로시마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은 진실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함께 계셔서 “한 곳”에 우리를 돌아오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약속은 진실합니다. 이것은 나의 인생에도 또 이 교회의 행보에 있어서도 주님의 약속의 확실함이 증명되고 앞으로도 계속 밝혀져 나갈 것입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16절)
야곱은 잠이 깨어서 정직하게 고백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라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우리는 모를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장소에 계시는데 깨닫지 못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한 곳 ”에서 알았습니다. 야곱은 “한 곳”에서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함께 계셨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 곁에서 안식하고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을 깨닫는 장소입니다. 오랜만에 예배에 오신 분들이 예배 후에 “교회에 와서 안심이 된다 ”고 말씀하시는 것을 자주 듣습니다. 틀림없이 교회는 안심하고, 안식하며 주님의 팔에 안겨 자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꿈과 환상을 보는 장소이며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을 깨닫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주님을 경외하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17절입니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교회는 주님을 경외하면서 신앙을 고백하고 예배를 드리는 장소입니다. 바로 교회는 하나님 집이며 하늘이 열린 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의 문입니다. 이 문을 통하여 구원을 체험하고, 주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넘치는 은혜와 축복이 쏟아지는 장소입니다. 그곳이 벧엘, 하나님의 집입니다.
우리 교회도 75년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하늘의 문이 열리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역사가 일어나서 좀더 하나님을 우러러보는 교회이기를 원합니다.
이번 주도 주님의 약속을 마음에 새기며 야곱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