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말씀은 바울과 바나바의 제1차 전도 여행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더베에서 전도를 마친 바울과 바나바는 시리아 안디옥 교회로 돌아갑니다만 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서 루스드라, 이고니온을 지나 비시디아주의 안디옥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 행로는 아주 위험이 따르는 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그들을 박해하는 자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시리아 안디옥 교회로 가는거라면 이 루트 말고 더 가깝고 안전한 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굳이 이 위험한 길을 선택한 것은 자기의 목숨을 걸고라도 이 길로 가야만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사명감을 구체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이 22절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22절)
이 두 사도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자기들의 전도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굳게 해주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갖고 새롭게 제자가 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이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구원 받아 넘치는 기쁨과 감동으로 신앙 생활을 시작했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반드시 점점 약해져 엷게 흐려져 갑니다. 그러다 여러 가지 의문을 품기도 하고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받았다는 사실 보다도 현실적으로 자신들의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눈을 돌리게 되어 기쁨이 없는 신앙 생활을 보내는 사람도 나타납니다. 더구나 방해나 박해 등의 시련이 덮쳐 오면 그 사람의 신앙 생활은 어떻게 될까요? 그 때문에 바울은 여기서 새롭게 제자로 된 사람들을 다시 만나서 격려하기 위하여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간 것입니다.
바울은 격려의 말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22절)
바울이 제일 염려하고 있었던 것은 전도를 방해하고 자기들을 괴롭힌 사람들의 존재였습니다. 자기들이 거기에 있을 동안은 자기들이 박해의 타깃이 되지만, 자기들이 없어지고 나면 반드시 그 공격의 화살은 새롭게 제자가 된 사람들에게 돌려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신앙 생활은 평온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신앙 생활은 심한 박해를 받을 것이 예상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지금 자기들이 받고 있는 여러 괴로움과 자기들의 구원의 완성이라는 일은 결코 무관계가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믿는 자는 많은 환난을 겪을 필요가 있다고까지 말한 것입니다.
단, 여기서 착각하면 안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환난을 이겨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어 원문을 직역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그 길의 도중에는 환난이 있다” 입니다. 그러니까 환난에 이기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 게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길은 구비되어 있다.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 길의 도중에는 환난이 있다. 괴로움이 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고 반드시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로 향하여 나아가자”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라는 말도 오해하기 쉬운 말입니다. 이 말은 너희들이 갖고 있는 힘으로 믿음을 계속 지키라고 권하는 게 아닙니다. 그 증거로서 바울은 이 권함을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입니다. 23절,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23절)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모이는 데에는 반드시 교회가 생깁니다. 그러나 그 교회가 매주 예배를 드리고 또 거기에 모이는 형제 자매들이 같이 위로하며 서로 격려하면서 신앙 생활을 보내기 위해서는 그 교회를 인도하는 리더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그 때 교회를 위하여 장로들을 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금식 기도를 하며 새롭게 제자가 된 사람들이 믿음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나님께 위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일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 생활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오늘까지 지켜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교회를 주시고 그 교회의 활동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 생활을 인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에 머물기 위해서는 교회에 계속 있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환난이 있어도 또 시련을 받아도 우리는 교회를 떠나지 않고 교회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교회의 예배를 통해서 또 형제 자매와의 교제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 생활을 지켜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새롭게 제자가 된 사람들의 신앙 생활이 주님에 의해 지켜질 수 있도록 그들을 격려하며 그들을 위해 교회 임원들을 택하여 그 조직을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임무를 달성한 후 그들은 자기들을 파견한 안디옥 교회에 돌아가서 전도 여행의 보고를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26절,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 곳은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26~28절)
성경에는 이 바울과 바나바의 보고 내용이 불과 한 줄 밖에 쓰여 있지 않습니다만 실제로는 그들이 보고한 내용은 상당히 자세한 것이며 시간이 걸리는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라고 쓰여 있으니까 그들은 그 동안도 자기들의 전도 보고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했을지도 모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번 전도 여행에서 여러 가지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그들이 찾아간 동네에서 전도를 개시하면 확실히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말하는 복음에 귀를 기울여 새롭게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편 그들의 전도 활동을 방해하는 자도 나타나서 박해도 당했습니다. 박해자들에게 죽임을 당할뻔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새로운 동네로 이리저리 활동의 거점을 옮겨야 했습니다. 그 가운데 그들이 깨달았던 것이 “하나님께서 함께 행하셨다”라는 것이었습니다. (27절)
어떤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신다. 그래서 어떤 일에도 의미가 있고 하나님께 유익하지 않는 것, 또 자기들에게 유익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그들은 자기들의 경험을 통해서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자기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자기가 편한 것만 관심을 두고 그렇지 않은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우리들에게 가르치는 인생에 대한 견해는 그것과 다릅니다. 만약 그것이 고난이 된다할지라도 우리는 거기에서 반드시 소망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에는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신앙의 진리를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비시디아주의 안디옥으로 다시 되돌아가면서 그곳에 새롭게 생겨난 교회 사람들에게 전하며 격려하였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바울은 로마서 5장 3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로마서 5장 3~5절)
우리는 이 예배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끊임없이 “우리의 인생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은혜의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은혜의 사실을 통해서 우리의 인생에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고 거기서 새로운 소망을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를 주신 것을 감사합시다.
【 2021年 2月 7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
「信仰に踏みとどまる」 使徒言行録 14章 21~28節
今日の聖書箇所は、パウロ・バナバの第一回伝道旅行での最後の話しとなります。デルベの町での伝道を終えた二人は、シリアのアンティオキア教会へ帰るわけですが、帰る途中、リストラ、イコニオン、ピシティア州のアンティオキアへと引き返しながら帰りました。でも、それは大変危険を伴うものであったのです。なぜなら、そこには彼らを迫害する者たちが待ち構えていたからです。ただ、シリアのアンティオキア教会へ帰るだけなら、他に近くて安全なルートはありました。でも、彼らがこの危険なルートを選択したのは、自分の命をかけてもこのコースを辿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使命感を持っていたからです。
彼らの使命感を具体的に示しているのが22節です。「弟子たちを力づけ、『わたしたちが神の国に入るには、多くの苦しみを経なくてはならない』と言って、信仰に踏みとどまるように励ました。」(22節)
パウロたちは、危険を冒してでも、自分たちの伝道によって、信仰を持った人たちを力づけなければならい、励まさなければならいと考えました。確かに、神さまの恵みによって信仰を持ち、新たに弟子として加わった仲間たちがおりました。でも、信仰を持ち続けるというのは、それほど簡単なことではありません。救われた喜びに満ちあふれ、感動をもって信仰生活を始めたとしても、月日が経てばそれらは必ず薄らいできます。そして、様々な疑問を抱き始め、キリストに救われたと言う事実よりも、現実に自分たちの生活に起こる出来事に目を向けてしまい、喜びのない信仰生活を送る人も現れます。ましてや、妨害や迫害などの試練が襲ってきたら、その人の信仰生活はどうなってしまうでしょうか。そのために、パウロはここで新しく弟子となった人たちにもう一度会い、力づけ、励ますために来た道をもう一度引き返したのです。
パウロは励ましの言葉として、こう言っています。「わたしたちが神の国に入るには、多くの苦しみを経なくてはならない。」(22節)
パウロがまず危惧していたことは、伝道を妨害し、自分たちを苦しめた人たちの存在でした。自分たちがそこにいる間は、自分たちが迫害のターゲットになりますが、自分たちがいなくなったら、必ずその矛先は新たに弟子となった人たちに向けられます。そうなると、彼らの信仰生活は平穏無事と言うわけには行きません。彼らの信仰生活は厳しい迫害を受けることが予想されます。そのためにパウロは「わたしたちが神の国に入るには、多くの苦しみを経なくてはならない」と語っているのです。
パウロはここで今、自分たちの受けている様々な苦しみと、自分たちの救いの完成と言う出来事は決して無関係ではないと教えています。むしろ、私たちの救いが完成されるためには、信仰者は多くの苦しみを受ける必要があるとさえ言っているのです。
ただ、ここで勘違いしてはいけないことは、「神の国に入るためには苦しみに打ち勝たねばならない」と言っているの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ギリシャ語原文を直訳しますと、「私たちは、神の国へ入る。その道の途上には苦しみがある。」となります。ですから、苦しみに打ち勝ったら神の国へ入れると言っているのではなく、「すでに神の国への道は備えられている、必ず神の国に入れるのだ。しかしその途上には苦しみがある、戦いがある。でも、失望することなく必ず入れる神の国へ向かって歩もう」と言っているのです。
また、「信仰に踏みとどまるように」という言葉も誤解されやすい言葉です。この言葉は、「あなたたちが自分の持っている力で信仰を持ち続けるように」と勧めたのではありません。その証拠にパウロはこの勧めを語りながら次のようなことをしているのです。
23節、「また、弟子たちのため教会ごとに長老たちを任命し、断食して祈り、彼らをその信ずる主に任せた。」(23節)
キリストの弟子たちが集まるところには必ず教会は生まれます。しかし、その教会が毎週礼拝を献げ、またそこに集まる兄弟姉妹たちがともに慰め、励まし合って信仰生活を送るためには、その教会を導くリーダーたちが必要になります。パウロはこのとき教会のために「長老たちを任命し」たのです。そして断食をして、新しく弟子となった人たちが信仰に踏みとどま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神さまに委ねました。神さまは教会の働きを通して私たちの信仰生活を守ってくださるのです。私たちの信仰が今日まで守られているのは、神さまが私たちのために教会を与えてくださり、その教会の活動を通して私たちの信仰生活を導いてくださったからなのです。ですから私たちが信仰に踏みとどまるためには、教会にとどまり続ける必要があるのです。どんなに困難な出来事があっても、また試練に出会ったとしても、私たちは教会を離れないで教会生活を続けるべきなのです。そうすれば、神さまは教会の礼拝を通して、また兄弟姉妹との交わりの通して、私たちの信仰生活を守り導いてくださるからです。
パウロとバルナバは新しく弟子となった人々の信仰生活が主によって守られるように、彼らを励まし、彼らのために教会の役員を選び、その組織をしっかりとしたものとしました。そしてその任務を果たした後、彼らは自分たちをこの伝道旅行に派遣したアンティオキア教会に戻り、伝道旅行の報告を伝えようとしたのです。
26節、「そこからアンティオキアへ向かって船出した。そこは、二人が今成し遂げた働きのために神の恵みにゆだねられて送り出された所である。到着するとすぐ教会の人々を集めて、神が自分たちと共にいて行われたすべてのことと、異邦人に信仰の門を開いてくださったことを報告した。そして、しばらくの間、弟子たちのと共に過ごした。」(26~28節)
聖書には、このパウロとバルナバの報告の内容がわずか一行しか記されていませんが、実際の彼らの報告は、かなり詳細で、時間のかかるものであったと思われます。二人は「しばらくの間、弟子たちのと共に過ごした」と記されていますから、彼らはこの間も、自分たちの伝道報告をたくさんの人々に伝え続けたのかもしれません。
パウロとバルナバは、この度の伝道旅行において様々なことを経験しました。神さまの恵みの中で、彼らが訪れた町で伝道を開始すると、確かに多くの人々が彼らの語る福音に耳を傾け、新しく弟子となりました。しかし、一方で、彼らの伝道活動を妨害する者も現れ、迫害も受けました。殺されそうにもなりました。そのために、新しい町に転々と活動の拠点を移さざるを得なかったのです。その中で、彼らが悟ったことが、「神が自分たちと共にいてくださった」(27節)ということだったのです。
どんなことが起こっても神さまが私たちと共にいてくださる。だからどんな出来事にも意味があり、神さまのためにならないこと、また自分たちのためにならないことはないと彼らは自分たちの経験の中で悟ったことでした。
私たちは自分の人生に起こる出来事の中で自分にとって都合のよいことだけに目を向けて、そうではないことには目を向けないこともできます。しかし、パウロが私たちに教える人生の見方はそれとは違います。たとえそれが私たちにとって苦難でしなかないものでも、そこから私たちは必ず希望を見出すことができるのです。なぜなら、私たちの人生には神さまが共におられるからです。
この信仰の真理をリストラやイコニオン、ピシティア州のアンティオキヤに引き返しながら、そこに新しく生まれた教会の人々にも語り、力づけ、励ましたのだろうと思います。
パウロは、ローマの信徒への手紙5章3節でこう言っています。「そればかりでなく、苦難をも誇りとします。わたしたちは知っているのです、苦難は忍耐を、忍耐は練達を、練達は希望を生むということを。希望はわたしたちを欺くことがありません。わたしたちに与えられた聖霊によって、神の愛がわたしたちの心に注がれているからです」(ローマ5章3~5節)。
私たちはこの礼拝に集い、神さまの御言葉を聞く中で絶えず「私たちの人生には神が共におられる」と言う恵みの事実を告げ知らされます。そして、私たちはその恵みの事実を通して、私たちの人生に起こる出来事を理解し、そこで新たな希望を見出すことができるのです。私たちが信仰に踏みとどまることが出来るように、神さまが私たちに教会を与えてくださっていることを感謝したいと思います。
【2021년 2월 7일 주일예배(요약판)】
“이 믿음에 머무른다” 사도행전 14장 21~28절
오늘의 성경말씀은 바울과 바나바의 제1차 전도 여행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더베에서 전도를 마친 바울과 바나바는 시리아 안디옥 교회로 돌아갑니다만 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서 루스드라, 이고니온을 지나 비시디아주의 안디옥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 행로는 아주 위험이 따르는 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그들을 박해하는 자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시리아 안디옥 교회로 가는거라면 이 루트 말고 더 가깝고 안전한 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굳이 이 위험한 길을 선택한 것은 자기의 목숨을 걸고라도 이 길로 가야만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사명감을 구체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이 22절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22절)
이 두 사도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자기들의 전도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굳게 해주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갖고 새롭게 제자가 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이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구원 받아 넘치는 기쁨과 감동으로 신앙 생활을 시작했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반드시 점점 약해져 엷게 흐려져 갑니다. 그러다 여러 가지 의문을 품기도 하고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받았다는 사실 보다도 현실적으로 자신들의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눈을 돌리게 되어 기쁨이 없는 신앙 생활을 보내는 사람도 나타납니다. 더구나 방해나 박해 등의 시련이 덮쳐 오면 그 사람의 신앙 생활은 어떻게 될까요? 그 때문에 바울은 여기서 새롭게 제자로 된 사람들을 다시 만나서 격려하기 위하여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간 것입니다.
바울은 격려의 말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22절)
바울이 제일 염려하고 있었던 것은 전도를 방해하고 자기들을 괴롭힌 사람들의 존재였습니다. 자기들이 거기에 있을 동안은 자기들이 박해의 타깃이 되지만, 자기들이 없어지고 나면 반드시 그 공격의 화살은 새롭게 제자가 된 사람들에게 돌려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신앙 생활은 평온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신앙 생활은 심한 박해를 받을 것이 예상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지금 자기들이 받고 있는 여러 괴로움과 자기들의 구원의 완성이라는 일은 결코 무관계가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믿는 자는 많은 환난을 겪을 필요가 있다고까지 말한 것입니다.
단, 여기서 착각하면 안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환난을 이겨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어 원문을 직역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그 길의 도중에는 환난이 있다” 입니다. 그러니까 환난에 이기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 게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길은 구비되어 있다.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 길의 도중에는 환난이 있다. 괴로움이 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고 반드시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로 향하여 나아가자”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라는 말도 오해하기 쉬운 말입니다. 이 말은 너희들이 갖고 있는 힘으로 믿음을 계속 지키라고 권하는 게 아닙니다. 그 증거로서 바울은 이 권함을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입니다. 23절,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23절)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모이는 데에는 반드시 교회가 생깁니다. 그러나 그 교회가 매주 예배를 드리고 또 거기에 모이는 형제 자매들이 같이 위로하며 서로 격려하면서 신앙 생활을 보내기 위해서는 그 교회를 인도하는 리더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그 때 교회를 위하여 장로들을 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금식 기도를 하며 새롭게 제자가 된 사람들이 믿음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나님께 위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일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 생활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오늘까지 지켜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교회를 주시고 그 교회의 활동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 생활을 인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에 머물기 위해서는 교회에 계속 있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환난이 있어도 또 시련을 받아도 우리는 교회를 떠나지 않고 교회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교회의 예배를 통해서 또 형제 자매와의 교제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 생활을 지켜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새롭게 제자가 된 사람들의 신앙 생활이 주님에 의해 지켜질 수 있도록 그들을 격려하며 그들을 위해 교회 임원들을 택하여 그 조직을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임무를 달성한 후 그들은 자기들을 파견한 안디옥 교회에 돌아가서 전도 여행의 보고를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26절,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 곳은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26~28절)
성경에는 이 바울과 바나바의 보고 내용이 불과 한 줄 밖에 쓰여 있지 않습니다만 실제로는 그들이 보고한 내용은 상당히 자세한 것이며 시간이 걸리는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라고 쓰여 있으니까 그들은 그 동안도 자기들의 전도 보고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했을지도 모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번 전도 여행에서 여러 가지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그들이 찾아간 동네에서 전도를 개시하면 확실히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말하는 복음에 귀를 기울여 새롭게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편 그들의 전도 활동을 방해하는 자도 나타나서 박해도 당했습니다. 박해자들에게 죽임을 당할뻔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새로운 동네로 이리저리 활동의 거점을 옮겨야 했습니다. 그 가운데 그들이 깨달았던 것이 “하나님께서 함께 행하셨다”라는 것이었습니다. (27절)
어떤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신다. 그래서 어떤 일에도 의미가 있고 하나님께 유익하지 않는 것, 또 자기들에게 유익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그들은 자기들의 경험을 통해서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자기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자기가 편한 것만 관심을 두고 그렇지 않은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우리들에게 가르치는 인생에 대한 견해는 그것과 다릅니다. 만약 그것이 고난이 된다할지라도 우리는 거기에서 반드시 소망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에는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신앙의 진리를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비시디아주의 안디옥으로 다시 되돌아가면서 그곳에 새롭게 생겨난 교회 사람들에게 전하며 격려하였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바울은 로마서 5장 3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로마서 5장 3~5절)
우리는 이 예배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끊임없이 “우리의 인생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은혜의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은혜의 사실을 통해서 우리의 인생에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고 거기서 새로운 소망을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를 주신 것을 감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