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 말씀은 통상 수태 고지라고 불리는 장면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으로부터 파견된 천사 가브리엘의 고지와 그에 대한 마리아의 회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맨 먼저 “은혜를 받은 자여”(28절) 라고 말을 꺼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라는 이 인사에 당황하는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은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31-32절) 라고 계속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고지를 받은 마리아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모든 것이 정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가브리엘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라고 주저함없이 말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있어서 이는 은혜이긴 커녕 마리아 자신의 인생이 크게 바뀌어 버리는 재난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약혼자 요셉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간음의 여자로 여겨져 유대의 율법에 따라 돌로 치는 석타형에 처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입장 따위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태어나는 아이가 성인이 된 후의 아주 먼 훗날 이야기입니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32-33절)
정신이 아찔해지는 이야기입니다만, 반대로 이것은 마리아가 건전한 성경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증거인 것입니다. 당시 유대의 왕가는 이미 몰락하고 있었고, 이 시대 유대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로마 제국이며, 그 괴뢰로서 다윗 왕과는 상관없는 헤롯이 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다윗 왕조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던 것입니다.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라기는커녕 오히려 오래 전에 끝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라”라고 마리아에게 전한 것은 그녀가 성경 신앙의 세계에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의 신앙인들은 보통 메시아 예언이라고 불리는 선지자 나단이 다윗에게 말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었고, 시대가 어떻든 간에 이것을 근거로 다윗 왕조의 재래를 대망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하 7:12-13) 사상 최강의 세계 제국 로마에 지배되고 있는 시대에 있어도 마리아가 성경의 말씀에 서 있었기 때문에 천사의 메시지는 의미를 가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그저 무작정 따르는 게 아니라 냉정하게 자신의 생각을 천사 가브리엘에게 호소했습니다. 그것이 34절입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34절)
마리아에게 있어서 내 자식이 메시아로 여겨지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며, 믿기 어렵다고 해도 그것을 견디는 신앙은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넘어야 하는 장벽은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라는 이 처녀 탄생의 신비였습니다. 남성 경험이 없는데 어떻게 출산할 수 있느냐고 여기서 마리아는 매우 이성적으로 묻고 있는 것입니다. 건전한 성경 신앙은 결코 이성과 무관계가 아닙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영예로운 약속을 앞에 두고 황홀 상태가 되어 아멘, 아멘을 외치는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주 이성적으로 현실을 직시하려고 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천사 가브리엘이 이렇게 회답하고 있습니다. 35절입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35-37절)
천사가 대답한 처녀 탄생의 이유는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단지 이것뿐입니다. 더 이상의 정보는 일절 마리아에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혹은, 친척이었던 엘리사벳의 예가 추가됩니다만 이것은 처녀 탄생의 설명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그 이상의 것은 일절 말하지 않고 오히려 신앙인에게 가장 중요한 진리를 한마디로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37절)
이것입니다. 결국, 이것을 믿는지 안 믿는지에 따라 신앙이 결정됩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유일하시며 참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그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죽은 자조차도 부활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반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하나님이란 원래 하나님이 아니고 그런 미덥지 않는 하나님이라면 아무리 믿어도 소용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라고 선언하는데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실은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으로 시작된 초기 교회에서는 이 처녀 탄생에 대해서는 비교적 쉽게 받아들여지는 진리였던 것 같습니다.
마리아도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라는 이 선언에 신앙을 가지고 대답했습니다. 38절입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실은, 그리스어의 본문에서는 문두에 “보라” 라는 말이 있고 여기를 정확하게 번역한다면 “보세요,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마리아는 지금 모든 것을 내줄 각오를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이 “보세요” 입니다. “보세요, 이 가난하고 어리석은 저를 부디 써 주세요.”
이것이 마리아의 신앙입니다. 참으로 겸손하면서도 담대한 신앙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마리아의 신앙”에 대해서 두 가지를 간단하게 확인하고 마치겠습니다.
먼저 이 “마리아의 신앙”은 완전히 수동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묵묵히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신앙이란 본래 이런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주권자는 주님이신 하나님이시며 주역은 십자가의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 앞에는 완전히 수동적이며 나의 형편이나 사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지배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마리아의 모습에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라고 곤혹스러운 길이 우리에게 나타났을 때에 오히려 우리의 신앙은 시험 받고, 주님께서 쓰시게 되어 신앙의 정점을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이 나사렛의 처녀 마리아가 주 예수님을 잉태한 이유,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것은 모든 믿는 자에게 공통되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신앙이 주어진다는 것은 우리의 의지나 결단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것과는 무관합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로부터 신앙은 주어지고, 그때 믿지 않을 수 없다, 교회에 다니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안계시면 살아갈 수 없다,라는 그런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처녀 마리아가 성령의 힘으로 주 예수님을 잉태한 것처럼, 우리 죄인도 성령의 힘으로 말미암아 주 예수님께서 내 안에 함께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위대한 힘은 처녀에게도 늙은 엘리사벳에게도 임하여 세계사 무대 뒤편의 쓸쓸한 장소에서 실현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신분이나 연령은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약하고 가난한 곳에 “하나님은 강력하다” 라는 이름의 천사 가브리엘이 파견되어 그곳에서 하나님의 힘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는 것”입니다.
2021年12月12日 主日礼拝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イザヤ書(이사야) 62章 11~12節
〇讃 頌 讃頌歌 97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聖書奉読 ルカによる福音書(누가복음) 1章 26~38節
〇説 教 「おとめマリアの信仰(처녀 마리아의 신앙)」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105
〇献 金
〇報 告
〇感謝祈祷
〇頌 栄 讃頌歌 1
〇祝 祷
【 2021年 12月 12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
「おとめマリアの信仰」 ルカによる福音書 1章 26~38節
今日の御言葉は、通常受胎告知と呼ばれる場面です。ここには、神さまから遣わされた天使ガブリエルの告知と、それに対するマリアの回答が記されています。
天使ガブリエルは、真っ先に「おめでとう、恵まれた方」(28節)と切り出しました。「おめでとう、恵まれた方」という、この挨拶に戸惑うマリアに対してガブリエルは、「マリア、恐れることはない。あなたは神から恵みをいただいた。あなたは身ごもって男の子を産むが、その子をイエスと名付けなさい」(31-32節)と、続けます。
ここで大切なのは、この告知を受けたマリアの意志とは無関係に全てが決められていたことです。それでもガブリエルは、「あなたは神から恵みをいただいた」、と言ってはばからないのです。マリアにとっては、恵みどころか自分の人生が大きく変わってしまう災難であったに違いありません。何よりもまず、許婚のヨセフにどう話せばよいのかもわかりません。或いは、姦淫の女と見なされ、ユダヤの律法に基づいて、石打の刑に処せられるかもしれません。
しかし、そんな彼女の立場などお構いなしに、続けて語られることは、生まれてくる子が成人した後のずいぶん先の話です。「その子は偉大な人になり、いと高き方の子と言われる、神である主は、彼に父ダビデの王座をくださる。彼は永遠にヤコブの家を治め、その支配は終わることがない。」(32-33節)
気が遠くなるようなお話しですが、逆にこれはマリアが、健全な聖書信仰を持っていた証なのでしょう。当時ユダヤの王家はすでに没落していて、この時代ユダヤを治めていたのは、ローマ帝国であり、その傀儡でダビデ王とは無関係のヘロデ王でありました。ですから、現実的には、ダビデ王朝など、とうの昔に終わっていたのです。「その支配は終わることがない」どころではなく、むしろとっくの昔に終わっていたのです。それでもなお、「ダビデの王座をくださる」、とマリアに告げられたのは、彼女が聖書信仰の世界に生きていたからです。
当時ユダヤの信仰者は、通常メシア預言と呼ばれる、預言者ナタンがダビデに語った神の言葉を信じていて、時代がどうであれ、これを根拠にダビデ王朝の再来を待望していたのです。(サムエル記下7:12-13) 史上最強の世界帝国ローマに支配されている時代にあってもなお、マリアが聖書の御言葉に立っていたから、天使のメッセージは意味を持ったのであったのです。
それでもマリアは、ただ闇雲に従うのではなく、冷静に自分の思いを天使ガブリエルに訴えました。それが34節です。「どうして、そのようなことがありえましょうか。わたしは男の人を知りませんのに。」(34節)
マリアにとって、我が子がメシアとされることは名誉なことであり、信じ難いとはいえ、それに耐える信仰は持っていたでしょう。しかし、彼女が乗り越えなければならない障壁は「わたしは男の人を知りませんのに」、この処女降誕の神秘であったのです。男性経験がないのに、どうして出産することが出来るのだろうかと、ここでマリアは非常に理性的に問うているわけです。健全な聖書信仰は、決して理性と無関係ではありません。マリアは、極めて栄誉な約束を前に、恍惚状態になってアーメン、アーメンと叫ぶの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むしろ非常に理性的に現実を見極めようとしているのです。
それに対して、天使ガブリエルがこのように回答しています。35節です。「聖霊があなたに降り、いと高き方の力があなたを包む。だから、生まれる子は聖なる者、神の子と呼ばれる。あなたの親類のエリサベトも、年をとっているが、男の子を身ごもっている。不妊の女と言われていたのに、もう六か月になっている。神にできないことは何一つない」(35-37節)
天使が答えた処女降誕の理由は、「聖霊があなたに降り、いと高き方の力があなたを包む」、ただこれだけです。これ以上の情報は、一切マリアには与えられませんでした。或いは、親類であったエリサベトの例が追加されますが、これは処女降誕の説明とは言えません。しかし、天使はそれ以上のことは一切言わないで、かえって信仰者にとって最も大切な真理を一言で宣言します。「神にできないことは何一つない。」(37節)
これです。結局、これを信じるか信じないかで信仰が決まります。私たちの神さまは、唯一であり真の神さまです。天地万物を創造され、今もその全てを支配し、死者さえも復活させる神さまです。逆に出来ないことがある神など、そもそも神ではないし、そんな頼りない神ならいくら信じても無駄です。もし「神にできないことは何一つない」、と宣言されて受け入れられないのでしたら、それはキリスト教信仰ではありません。
実は、復活の主イエス・キリストの証言から始まった最初期の教会においては、処女降誕については、比較的簡単に受け入れられる真理であったようです。
マリアも「神にできないことは何一つない」という、この宣言に信仰をもって答えました。38節です。「わたしは主のはしためです。お言葉どおり、この身に成りますように。」(38節)
マリアは「わたしは主のはしためです」、と告白しています。実は、ギリシア語の本文では、文頭に「見よ」と言うことがあって、ここを正確に訳すならば、「ご覧ください、わたしは主のはしためです」と、なります。
マリアは、今、全てを明け渡す覚悟を決めたのです。それがこの「ご覧ください」なのです。「ご覧ください、貧しく愚かなこの私を、それでもどうか用いてください。」
これがマリアの信仰であります。なんと慎ましくも大胆な信仰でありましょう。
最後に、この「マリアの信仰」について2つのことを簡単に確認して終わります。
まず、この「マリアの信仰」は、完全に受け身であった、ということです。マリアは有無を言わずに従うしかなかったのです。そして、信仰とは本来このようなものです。信仰の世界では主権者は主なる神さまであり、主役は十字架の主イエス・キリストです。私たちは、その前には全く受け身であり、私の都合ではなく、神さまの御心に支配されるのです。それが、このマリアの姿に示されているのです。
「どうして、そのようなことがありえましょうか」と困惑する道が、私たちに示された時、むしろ私たちの信仰は試され、主に用いられ、信仰の頂点に向かっていくのです。
それから2つ目、このナザレのおとめマリアが主イエスさまを身ごもった理由、「聖霊があなたに降り、いと高き方の力があなたを包む」、これは全ての信仰者に共通している神の御業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
信仰が与えられる、というのは、私たちの意志や決断だけではなく、むしろ、そのようなものとは無関係です。「聖霊があなたに降り、いと高き方の力があなたを包む」から信仰は与えられ、その時、信じざるを得ない、教会に通わずにはいられない、神さまがいないと生きていけない、そういう状況にされてしまうのです。
おとめマリアが聖霊の力で主イエスさまを身ごもったように、私たち罪人も聖霊の力によって、主イエスさまが私の中に住んで共にいて下さるからなのです。この偉大な力は、おとめにも老婆にも働き、世界史の舞台裏のさびれた場所で実現しました。この世の身分や年齢は問題ではありません。最も弱く貧しいところに「神は力強い」という名の天使ガブリエルは遣わされ、そこにこそ、神さまの力が実現するのです。しかも「神にできないことは何一つない」のです。
【2021년 12월 12일 주일예배(요약판)】
“처녀 마리아의 신앙” 누가복음 1장 26~38절
오늘의 성경 말씀은 통상 수태 고지라고 불리는 장면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으로부터 파견된 천사 가브리엘의 고지와 그에 대한 마리아의 회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맨 먼저 “은혜를 받은 자여”(28절) 라고 말을 꺼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라는 이 인사에 당황하는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은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31-32절) 라고 계속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고지를 받은 마리아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모든 것이 정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가브리엘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라고 주저함없이 말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있어서 이는 은혜이긴 커녕 마리아 자신의 인생이 크게 바뀌어 버리는 재난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약혼자 요셉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간음의 여자로 여겨져 유대의 율법에 따라 돌로 치는 석타형에 처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입장 따위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태어나는 아이가 성인이 된 후의 아주 먼 훗날 이야기입니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32-33절)
정신이 아찔해지는 이야기입니다만, 반대로 이것은 마리아가 건전한 성경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증거인 것입니다. 당시 유대의 왕가는 이미 몰락하고 있었고, 이 시대 유대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로마 제국이며, 그 괴뢰로서 다윗 왕과는 상관없는 헤롯이 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다윗 왕조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던 것입니다.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라기는커녕 오히려 오래 전에 끝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라”라고 마리아에게 전한 것은 그녀가 성경 신앙의 세계에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의 신앙인들은 보통 메시아 예언이라고 불리는 선지자 나단이 다윗에게 말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었고, 시대가 어떻든 간에 이것을 근거로 다윗 왕조의 재래를 대망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하 7:12-13) 사상 최강의 세계 제국 로마에 지배되고 있는 시대에 있어도 마리아가 성경의 말씀에 서 있었기 때문에 천사의 메시지는 의미를 가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그저 무작정 따르는 게 아니라 냉정하게 자신의 생각을 천사 가브리엘에게 호소했습니다. 그것이 34절입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34절)
마리아에게 있어서 내 자식이 메시아로 여겨지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며, 믿기 어렵다고 해도 그것을 견디는 신앙은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넘어야 하는 장벽은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라는 이 처녀 탄생의 신비였습니다. 남성 경험이 없는데 어떻게 출산할 수 있느냐고 여기서 마리아는 매우 이성적으로 묻고 있는 것입니다. 건전한 성경 신앙은 결코 이성과 무관계가 아닙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영예로운 약속을 앞에 두고 황홀 상태가 되어 아멘, 아멘을 외치는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주 이성적으로 현실을 직시하려고 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천사 가브리엘이 이렇게 회답하고 있습니다. 35절입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35-37절)
천사가 대답한 처녀 탄생의 이유는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단지 이것뿐입니다. 더 이상의 정보는 일절 마리아에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혹은, 친척이었던 엘리사벳의 예가 추가됩니다만 이것은 처녀 탄생의 설명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그 이상의 것은 일절 말하지 않고 오히려 신앙인에게 가장 중요한 진리를 한마디로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37절)
이것입니다. 결국, 이것을 믿는지 안 믿는지에 따라 신앙이 결정됩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유일하시며 참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그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죽은 자조차도 부활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반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하나님이란 원래 하나님이 아니고 그런 미덥지 않는 하나님이라면 아무리 믿어도 소용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라고 선언하는데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실은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으로 시작된 초기 교회에서는 이 처녀 탄생에 대해서는 비교적 쉽게 받아들여지는 진리였던 것 같습니다.
마리아도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라는 이 선언에 신앙을 가지고 대답했습니다. 38절입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실은, 그리스어의 본문에서는 문두에 “보라” 라는 말이 있고 여기를 정확하게 번역한다면 “보세요,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마리아는 지금 모든 것을 내줄 각오를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이 “보세요” 입니다. “보세요, 이 가난하고 어리석은 저를 부디 써 주세요.”
이것이 마리아의 신앙입니다. 참으로 겸손하면서도 담대한 신앙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마리아의 신앙”에 대해서 두 가지를 간단하게 확인하고 마치겠습니다.
먼저 이 “마리아의 신앙”은 완전히 수동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묵묵히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신앙이란 본래 이런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주권자는 주님이신 하나님이시며 주역은 십자가의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 앞에는 완전히 수동적이며 나의 형편이나 사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지배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마리아의 모습에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라고 곤혹스러운 길이 우리에게 나타났을 때에 오히려 우리의 신앙은 시험 받고, 주님께서 쓰시게 되어 신앙의 정점을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이 나사렛의 처녀 마리아가 주 예수님을 잉태한 이유,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것은 모든 믿는 자에게 공통되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신앙이 주어진다는 것은 우리의 의지나 결단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것과는 무관합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로부터 신앙은 주어지고, 그때 믿지 않을 수 없다, 교회에 다니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안계시면 살아갈 수 없다,라는 그런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처녀 마리아가 성령의 힘으로 주 예수님을 잉태한 것처럼, 우리 죄인도 성령의 힘으로 말미암아 주 예수님께서 내 안에 함께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위대한 힘은 처녀에게도 늙은 엘리사벳에게도 임하여 세계사 무대 뒤편의 쓸쓸한 장소에서 실현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신분이나 연령은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약하고 가난한 곳에 “하나님은 강력하다” 라는 이름의 천사 가브리엘이 파견되어 그곳에서 하나님의 힘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