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23장11절)
이 말씀은 혼자 고독과 불안 가운데 있었던 바울에게 주 예수님께서 바울 곁에 서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바울의 소원을 하나님께서 들어 주셨다는 것과 주님께서 어떤 때라도 함께 곁에 계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으로 바울은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을 둘러싸는 위험한 상황은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습니다. 다른 성경 부분에서는 붙잡혀 있는 사도들을 천사가 도왔다거나 하나님의 놀랄 만한 기적이 일어나서 상황이 일변하는 것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런 사건은 일체 보고되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은 바울의 언동이나 신앙에 관한 것이 아니라 바울을 적대하는 유대인들의 활동이나 바울을 잡은 로마군 천부장의 사정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나타내고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주 예수님께서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들을 이용해 자신의 약속을 실현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의 활동을 생각할 때 그 예수님을 열심히 믿는 신앙인들에게만 관심을 가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의 활동은 그런 신앙인들 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여기에 등장하는 본인들은 그런 것을 의식하지는 않지만 주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쓰시고 또 모든 일들을 통해서 자신의 약속을 실현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성경 말씀은 주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적대하는 유대인들이나 로마군 천부장을 통해 어떤 역사를 하셨는지를 우리에게 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병영에 끌려가 외계와의 접촉은 차단되고 있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알 길이 없는 곳에서 바울을 살해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책략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40명 이상의 사람들이 바울을 죽일 때까지 먹고 마시지 않겠다는 맹세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진지하게 바울을 죽이려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의 관리하에 있습니다. 그 바울을 다시 공회에 심의 명목으로 호출해서 공회로 가는 도중에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당연히 바울에게는 로마병의 호위가 붙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바울을 덮친다는 것은 목숨을 건 결사적인 것입니다. 또 로마 제국에 거역하는 일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유대인들에게 격렬한 제재가 내려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40명의 유대인들은 자신의 생명과 온 유대를 위험에 처하게 하더라도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영내에서 어떻게든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서 제사장이나 장로들에게 청을 했습니다. 아마 사두개인의 제사장이나 장로들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들이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공회에서 재심문하고 싶다며 데리고 나가면 바울을 손에 넣을 준비를 갖추었다는 것입니다.(14-15절)
그런데 그들의 주도면밀한 계획은 어째서인지 그 계획이 외부에 누설되어 버립니다. 이 음모를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렸다”(16절)는 것입니다. 바울의 자매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는 바울에게 조카가 됩니다. 이 조카는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과 적대하는 유대인 측에 있다가 살해 계획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친족의 정으로 외삼촌인 바울에게 위험을 알린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접한 바울은 백부장에게 청하여 자신의 조카를 천부장에게로 인도해달라고 했습니다.(17절) 그래서 바울의 조카는 즉시 천부장에게로 인도받고 이 계획을 천부장이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천부장의 판단은 매우 빨라서 그는 이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서 그 날 밤에 바울을 가이사랴의 마을로 호송하는 준비를 시작합니다. 이 가이사랴에는 유대를 포함한 시리아주를 통치하는 총독의 주거지가 있었습니다. 천부장은 가이사랴에 있던 총독 벨릭스에게 바울을 호송하기 위해서 “보병 200명, 기병 70명, 보조병 200명”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바울 한 명을 호송하는데 470명의 경호를 붙인다는 것은 매우 삼엄한 상황입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목숨도 개의치 않고 습격해 덮쳐 오는 40명의 열광적인 테러 집단과 맞아 싸우기 위해서는 로마로서도 이 정도의 인원이 필요하다고 천부장은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천부장은 바울을 위해서 총독 벨릭스 앞으로 일부러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 편지의 문면이 여기서 보고되고 있습니다(26-30절). 이 편지를 읽으면 천부장은 로마 시민인 바울을 보호하고 그에게 심판이 내리도록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편지에는 그가 부하를 시켜 바울을 채찍질하려고 했던 일등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일체 생략되어 있습니다. 요컨대 이 편지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은 천부장은 자기 신변보호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잘 보이려고 게다가 자기가 책임을 추궁당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 귀찮은 죄수인 바울을 얼른 자신의 관할 지역이 아닌 곳으로 보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천부장의 재빠른 결단으로 바울은 많은 로마병의 보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을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도행전은 바울의 조카나 천부장 그리고 바울을 암살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여기에 등장시키고 있습니다만, 주 예수님께서 그들을 쓰셔서 바울에게 말씀하신“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라고 하는 약속을 어떻게 실현해 갔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 속에서 사도행전의 다른 부분에 기록되어 있는 기적이나 천사의 출현을 경험하는 것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 앞에 돌연 천사가 나타나고 우리를 인도하거나 우리가 기도하면 돌연 대지진이 일어나고 주위의 풍경을 일변시켜 버리는 것 같은 것을 경험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인도해 주시고 있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때에 당사자인 우리에게도 알 수 없을 만큼 일상적인 일들을 통해서 또 우리 주위의 사건이나 우리와 관련된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셔서 그 약속을 실현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은 그런 식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잘 가르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더 중요하고 관계가 깊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해 여러가지 약속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헛되이 끝나 버리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약속이라면 잊혀지거나 취소될 수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약속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신 약속을 바울에게 말씀하신 약속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실현해 주십니다. 그러고 보면 바울의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을 소개한 사도행전과 같은 서적이 우리 각자의 삶을 통해서도 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 우리의 삶을 기록하는 우리 자신의 사도행전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이야기의 당사자이면서 자신의 인생에 일어나는 일들, 자신과 관계되는 세계의 사건들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성경말씀은 그런 우리에게도 “괜찮아, 하나님의 약속이 바울의 생애를 통해 이루어져 간 것처럼 당신의 삶을 통해서도 실현되려고 한다”고 가르치고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신형 코로나 감염증 때문에 큰 시련 속에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는 것도 교제를 하는 것도 하지 못합니다. 전도에 있어서는 큰 타격이며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새롭게 예배에 참석하신 분도 계시고 교회 학교도 다시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의 활동이 대폭 제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 코로나 상황에 있더라도 우리 곁에 계셔서 계속 말씀해 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를 통해 어떻게 실현될지 기대하면서 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2021年9月5日 主日礼拝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ローマ(사편) 14章 8~9節
〇讃 頌 讃頌歌 374(1, 3節)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聖書奉読 使徒言行録(사도행전) 23章12~35節
〇説 教 「勇気を出しなさ(모든 일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382(1, 4節)
〇献 金
〇報 告
〇感謝祈祷
〇頌 栄 讃頌歌 1
〇祝 祷
【 2021年 9月 5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
「全ての出来事に神さまの導きが」使徒言行録23章12~35節
「勇気を出せ。エルサレムでわたしのことを力強く証ししたように、ローマでも証し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23章11節)
この御言葉は、一人孤独の中で不安の中にあったパウロに、主イエスさまがパウロの側に立って言われた御言葉です。この御言葉は、パウロの願いが神さまに聞き入れられたことと、主がどのような時も側におられ導いておられることを示す言葉でした。この御言葉によってパウロは、新たな力と勇気を得ることが出来たでしょう。しかし、パウロを取り巻く危険な状況というのは、何一つ変わってはいないのです。他の聖書箇所では、囚われている使徒たちを天使が助けたとか、神さまの驚くべき奇跡が起こり、状況が一変するような興味深い話が記されています。ところが、ここではそのような出来事は一切報告されておりません。今日の聖書箇所は、パウロの言動とか信仰に関することではなく、パウロに敵対するユダヤ人たちの活動や、パウロをとらえたローマ兵の事情などが詳しく記録されています。一体これは私たちに何を示し、何を教えようと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
それは主イエスさまがここに登場する出来事や人物を用いてご自分の約束を実現されたということを私たちに知らせるためです。私たちは主イエスさまの働きを考える時、そのイエスさまを熱心に信じる信仰者たちだけに目を向けがちです。しかし、主イエスさまの働きはそのような信仰者の上だけに限定され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もちろんここに登場する本人たちはそんなことは意識してはおりませんが、主イエスさまはすべての人々を用い、また全ての出来事を通して、ご自分の約束を実現されるのです。そのような意味で今日の聖書箇所は、主イエスさまがパウロに敵対するユダヤ人や、ローマ兵を通してどのような御業をなされたのかを私たちに知らせようとしているのです。
さて、パウロは兵営に連れて行かれ、外界との接触は遮断されていました。そんなパウロがうかがい知ることのできないところで、パウロを殺害しようとする者たちの策略が進んでいました。40人以上の者たちが、パウロを殺すまで飲み食いしないという誓いを立てたというのです。飲み食いしないという誓いと聞いても、あまりピンとこられないかもしれませんが、彼らは本気になってパウロを殺そうと企てていたのです。パウロは今、ローマの管理下にあります。そのパウロを再度、最高法院に審議の名目で呼び出し、最高法院への途上でパウロを殺そうとしたのです。当然、パウロにはローマ兵の護衛がついています。その中でパウロを襲うというのは、命懸けのことです。また、ローマ帝国に逆らうことでもありますから、場合によっては、ユダヤ人に対して激しい制裁が下されるかもしれません。それでもなお、40人のユダヤ人たちは自分の命と全ユダヤを危険にさらしてもパウロを殺そうとしたのです。彼らにとって、それこそが、神さまに仕えることだと信じていたからです。
彼らはなりふり構わずパウロを殺そうとしました。彼らはパウロを兵舎から何とか外におびき出すために、祭司長や長老たちに願い出ました。おそらくサドカイ派の祭司長や長老たちだと思いますが、彼らがローマ兵に願い出て「パウロを最高法院で再尋問したい」と言って連れ出せば、そこでパウロを手にかける手はずを整えたというのです。(14-15節)
ところが、彼らの周到な計画は、どういうわけかその計画が外部に漏れてしまいます。この陰謀を「パウロの姉妹の子が聞き込み、兵営の中に入って来て、パウロに知らせた」(16節)というのです。パウロの姉妹の子ですから、彼はパウロにとって甥となります。この甥はクリスチャンではありません。ですから、パウロと敵対するユダヤ人側にいて殺害計画を知ったのでしょう。それでも、親族の情としておじであるパウロに危険を知らせたのでしょう。
この知らせを受けたパウロは百人隊長に申し出て、自分の甥を千人隊長のもとに連れて行ってほしいと願い出ました(17節)。そこでパウロの甥はすぐに千人隊長のもとに連れて行かれ、この計画が千人隊長に知らされることになったのです。
千人隊長の判断はとても速く、この計画を阻止するためにその日の晩にパウロをカイサリアの町に護送する手はずを始めます。このカイサリアにはユダヤを含むシリア州を統治する総督の住居がありました。千人隊長はカイサリアにいた総督フェリクスの元にパウロを護送するために「歩兵二百名、騎兵七十名、補助兵二百名」を使っています。それにしても、パウロ一人を護送するのに470人も警護につけるというのは、大変物々しい状況です。それは自らの命を顧みず襲ってくる40名の熱狂的なテロ集団を迎え撃つためにはローマとしてもこのくらいの人員が必要であると千人隊長は判断したのでしょう。
それから千人隊長はパウロのために総督フェリクス宛にわざわざ手紙を書き送りました。その手紙の文面がここで報告されています(26-30節)。この手紙を読むと千人隊長はローマ市民であるパウロを保護し、彼に公正な裁きが下るように尽力しているかのように見えます。しかし、この手紙には彼が部下に命じてパウロを鞭打とうとしたことなど、彼にとって都合の悪いことは一切省略されています。要するに、この手紙から分かりますことは千人隊長は自己保身を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自分を良く見せて、なおかつ、自分が責任を問われるような事態を避けるため、面倒な囚人であるパウロをさっさと自分の管轄地域でないところに送ろうとしたのです。
しかし、いずれにしてもこの千人隊長の素早い決断によってパウロはたくさんのローマ兵に守られてエルサレムを脱出することが出来たのです。
このように使徒言行録は、パウロの甥や千人隊長、そしてパウロを暗殺しようとする人々をここに登場させておりますが、主イエスさまが彼らを用いて、パウロに語った「ローマで証し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約束をどのように実現していったかを私たちに教えているのです。
このことは、私たちの信仰にとってとても重要なこと教えていると思います。なぜなら、私たちの人生の中で使徒言行録の他の部分に記されているような奇跡や天使の出現を経験することは稀だからです。私たちの目の前に突然天使が現れて私たちを導いたり、私たちが祈ると突然大地震が起こって周りの風景を一変させてしまうようなことを経験することはありません。しかし、だからと言って、神さまは私たちの人生を導いて下さってはいないということではないのです。むしろ、その時に当事者である私たちにも分からないほど日常的な出来事を通して、また、私たちの周りの事件や私たちに関わる人々を通して、神さまは私たちの人生を導き、その約束を実現してくだるのです。今日の聖書箇所は、そのような形で私たちの人生を導いてくださる神さまの御業をよく教えていると言えます。ですから、私たちにとって重要であり、身近な話しでもあるのです。
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私たちに神さまは、聖書の言葉を通して様々な約束を語って下さいます。そして、その約束はむなしく終わってしまうことはありません。人の約束なら忘れ去られたり、取り消されることがありますが、神さまの約束はそうではないからです。神さまは私たちに語られた約束を、パウロに語った約束と同じように必ず実現して下さるのです。そう考えますと、パウロの生涯を通して神さまの約束の実現を紹介した使徒言行録と同じような書物が、私たちのそれぞれの人生を通しても書き上げることが出来ると言え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この私たちの人生を書き記す私たち自身の使徒言行録は、いまだ未完です。そして私たちは今、その物語の当事者でありながら、自分の人生に起こる出来事、自分とかかわる世界の出来事の本当の意味を理解することが出来ず、心乱れたり、悩み続けています。しかし、今日の御言葉は、そんな私たちにも、「大丈夫、神さまの約束がパウロの生涯を通して実現して行ったように、あなたの人生を通しても実現しようとしている」と教え、励ましているのです。
私たちは今、新型コロナ感染症のために大きな試練の中にあります。教会においても自由に礼拝をすることも交わることも出来ません。伝道にとっては大打撃であり、経済的にも苦しい状況です。それでも、新しく礼拝に参加された方もおられますし、教会学校がまた再開することも出来ました。教会の活動は大幅に制限されているのにもかかわらず神さまの御業は進んでいるのです。
ですから皆さん、私たちはこのコロナ禍にあっても、私たちの側に立ち御言葉を語り続けて下さる主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ながら、神さまの約束が私たちを通してどのように実現していくのか楽しみにしながら、また希望をもって生きて行きましょう。
【2021년 9월 5일 주일예배(요약판)】
“모든 일들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사도행전 23장 12~35절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23장11절)
이 말씀은 혼자 고독과 불안 가운데 있었던 바울에게 주 예수님께서 바울 곁에 서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바울의 소원을 하나님께서 들어 주셨다는 것과 주님께서 어떤 때라도 함께 곁에 계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으로 바울은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을 둘러싸는 위험한 상황은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습니다. 다른 성경 부분에서는 붙잡혀 있는 사도들을 천사가 도왔다거나 하나님의 놀랄 만한 기적이 일어나서 상황이 일변하는 것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런 사건은 일체 보고되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은 바울의 언동이나 신앙에 관한 것이 아니라 바울을 적대하는 유대인들의 활동이나 바울을 잡은 로마군 천부장의 사정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나타내고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주 예수님께서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들을 이용해 자신의 약속을 실현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의 활동을 생각할 때 그 예수님을 열심히 믿는 신앙인들에게만 관심을 가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의 활동은 그런 신앙인들 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여기에 등장하는 본인들은 그런 것을 의식하지는 않지만 주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쓰시고 또 모든 일들을 통해서 자신의 약속을 실현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성경 말씀은 주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적대하는 유대인들이나 로마군 천부장을 통해 어떤 역사를 하셨는지를 우리에게 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병영에 끌려가 외계와의 접촉은 차단되고 있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알 길이 없는 곳에서 바울을 살해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책략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40명 이상의 사람들이 바울을 죽일 때까지 먹고 마시지 않겠다는 맹세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진지하게 바울을 죽이려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의 관리하에 있습니다. 그 바울을 다시 공회에 심의 명목으로 호출해서 공회로 가는 도중에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당연히 바울에게는 로마병의 호위가 붙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바울을 덮친다는 것은 목숨을 건 결사적인 것입니다. 또 로마 제국에 거역하는 일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유대인들에게 격렬한 제재가 내려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40명의 유대인들은 자신의 생명과 온 유대를 위험에 처하게 하더라도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영내에서 어떻게든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서 제사장이나 장로들에게 청을 했습니다. 아마 사두개인의 제사장이나 장로들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들이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공회에서 재심문하고 싶다며 데리고 나가면 바울을 손에 넣을 준비를 갖추었다는 것입니다.(14-15절)
그런데 그들의 주도면밀한 계획은 어째서인지 그 계획이 외부에 누설되어 버립니다. 이 음모를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렸다”(16절)는 것입니다. 바울의 자매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는 바울에게 조카가 됩니다. 이 조카는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과 적대하는 유대인 측에 있다가 살해 계획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친족의 정으로 외삼촌인 바울에게 위험을 알린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접한 바울은 백부장에게 청하여 자신의 조카를 천부장에게로 인도해달라고 했습니다.(17절) 그래서 바울의 조카는 즉시 천부장에게로 인도받고 이 계획을 천부장이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천부장의 판단은 매우 빨라서 그는 이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서 그 날 밤에 바울을 가이사랴의 마을로 호송하는 준비를 시작합니다. 이 가이사랴에는 유대를 포함한 시리아주를 통치하는 총독의 주거지가 있었습니다. 천부장은 가이사랴에 있던 총독 벨릭스에게 바울을 호송하기 위해서 “보병 200명, 기병 70명, 보조병 200명”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바울 한 명을 호송하는데 470명의 경호를 붙인다는 것은 매우 삼엄한 상황입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목숨도 개의치 않고 습격해 덮쳐 오는 40명의 열광적인 테러 집단과 맞아 싸우기 위해서는 로마로서도 이 정도의 인원이 필요하다고 천부장은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천부장은 바울을 위해서 총독 벨릭스 앞으로 일부러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 편지의 문면이 여기서 보고되고 있습니다(26-30절). 이 편지를 읽으면 천부장은 로마 시민인 바울을 보호하고 그에게 심판이 내리도록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편지에는 그가 부하를 시켜 바울을 채찍질하려고 했던 일등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일체 생략되어 있습니다. 요컨대 이 편지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은 천부장은 자기 신변보호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잘 보이려고 게다가 자기가 책임을 추궁당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 귀찮은 죄수인 바울을 얼른 자신의 관할 지역이 아닌 곳으로 보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천부장의 재빠른 결단으로 바울은 많은 로마병의 보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을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도행전은 바울의 조카나 천부장 그리고 바울을 암살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여기에 등장시키고 있습니다만, 주 예수님께서 그들을 쓰셔서 바울에게 말씀하신“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라고 하는 약속을 어떻게 실현해 갔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 속에서 사도행전의 다른 부분에 기록되어 있는 기적이나 천사의 출현을 경험하는 것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 앞에 돌연 천사가 나타나고 우리를 인도하거나 우리가 기도하면 돌연 대지진이 일어나고 주위의 풍경을 일변시켜 버리는 것 같은 것을 경험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인도해 주시고 있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때에 당사자인 우리에게도 알 수 없을 만큼 일상적인 일들을 통해서 또 우리 주위의 사건이나 우리와 관련된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셔서 그 약속을 실현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은 그런 식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잘 가르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더 중요하고 관계가 깊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해 여러가지 약속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헛되이 끝나 버리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약속이라면 잊혀지거나 취소될 수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약속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신 약속을 바울에게 말씀하신 약속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실현해 주십니다. 그러고 보면 바울의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을 소개한 사도행전과 같은 서적이 우리 각자의 삶을 통해서도 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 우리의 삶을 기록하는 우리 자신의 사도행전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이야기의 당사자이면서 자신의 인생에 일어나는 일들, 자신과 관계되는 세계의 사건들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성경말씀은 그런 우리에게도 “괜찮아, 하나님의 약속이 바울의 생애를 통해 이루어져 간 것처럼 당신의 삶을 통해서도 실현되려고 한다”고 가르치고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신형 코로나 감염증 때문에 큰 시련 속에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는 것도 교제를 하는 것도 하지 못합니다. 전도에 있어서는 큰 타격이며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새롭게 예배에 참석하신 분도 계시고 교회 학교도 다시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의 활동이 대폭 제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 코로나 상황에 있더라도 우리 곁에 계셔서 계속 말씀해 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를 통해 어떻게 실현될지 기대하면서 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