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에베소에서의 바울의 활동을 축복하셨습니다. 11절에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11절) 라고 쓰여 있습니다. “놀라운 능력”이란 병을 고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치료를 하는 일반적인 보통의 방법으로 병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바울이 몸에 걸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 그 자체가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러한 것들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힘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러한 소문은 에베소 전체는 물론이고 아시아 전역으로까지 퍼지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말하는 복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 바울의 고침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마술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3절입니다.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13절)
당시 마술하던 사람들의 존재는 당연한 예사였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사람들의 생활에 필요한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병을 고칠때라던가 뭔가 망설여지면 점을 보거나 하면서 사람들은 그들을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마술을 하던 어떤 유대인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신들 가운데 거기에 알맞는 이름을 골라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만, 그들은 바울의 평판을 듣고 바울이 말하는 예수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돈벌이를 위해서 바울의 힘 즉 하나님의 힘을 이용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힘은 자기들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역으로 봉변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스게와의 일곱아들도 이일을 했는데 그때 악귀는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15절) 라고 하면서 악귀들린 사람이 그 사람들에게 뛰어올라 제압하여 때리고 옷을 찢어 다치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마술을 하던 사람들과 같은 어리석은 짓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이런 일이 우리와 전혀 상관없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쪽으로 해 주신다면 따르겠다, 우리 뜻대로 해 주지 않으면 안 따르겠다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자기 소원을 위하여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위험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 마술하는 사람들처럼 오히려 악한 것에 말려들게 되어 버릴 경우도 있습니다. 인간의 힘이 아닌 것을 함부로 구할 때, 일시적으로는 좋을 지 몰라도 결국에는 멸망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힘은 우리의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죄와 죽음으로 운명지어졌던 우리 자신을 바꾸어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 위해 일하시는 힘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힘은 예수님을 주님으로서 경배하여 그 주님을 따라가려고 하는 사람들 위에 풍요롭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힘을 자신의 소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쓰려고 하거나 자기의 실력이 부족하기에 그 힘을 빌리려고 하는 사람 위에 결코 하나님의 힘은 작용하지 않습니다.
사실 오늘 이야기의 진정한 의미는 다음에 일어날 사람들의 반응 위에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17절입니다.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17절)
이 사건을 통해 우선 유대인과 헬라인들 사이에 예수에 대한 올바른 경외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또 새롭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교회에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임을 알았을 때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 고기잡이를 했을 때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것을 통해 베드로는 하나님께 경외심을 가졌고, 또 자신의 죄를 깨달았습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에도 “믿는 사람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18절) 라고 쓰여 있습니다. 베드로가 엄청난 물고기를 잡은 후,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5:8) 라고 말한 것 같이 하나님의 힘을 알게된 사람들은 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향을 향한다는 것이 회심, 회개이니까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향을 향할 때,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죄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라고 쓰여 있습니다만,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안 믿는 자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이미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 위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여기서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바른 경외를 하는 믿는 자들이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린 것입니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자기가 범하는 악행을 지적당하여 여기에 마지못해 나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님 앞에 자기의 잘못을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그 “악행” 또는 “잘못”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 대표적인 악행이 바로 그 뒤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사람들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19절)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마술에 관한 책을 숨겨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가치는 은 오만이나 되니까 엄청난 액수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하면서도 스게와의 일겁 아들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힘을 자기의 소망 실현의 도구로서 쓰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이 효과가 없을 때의 대비로서 마술 책을 숨겨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여기서 일어난 신기한 일은 많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신앙으로 인도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고백한 사람들의 마음에도 작용하여 그 마음을 바꾸고 참 신앙으로 인도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죄를 알았을 때, 그것은 마음 속으로만 반성해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살아가는 태도가 바뀌어 가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이야기에 등장하는 동방박사들도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치고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박사들이 점성술에 쓰는 도구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점성술의 도구를 예수님께 바치고 돌아간 것입니다. 즉 점성술을 그만두고 새 생활을 하기 위하여 돌아간 것입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에서도 은 오만닢어치나 되는 마술에 쓰이는 책을 불살랐습니다. 은 오만이라는 액수는 보통 사람들의 140년분의 임금에 상당하는 금액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불사른 것입니다. 어부였던 베드로가 배를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라간 것 처럼 예수님께 죄를 고백한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생활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이렇게 에베소 사람들은 회개하고 주님의 말씀 안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의 회개와 주님의 말씀에 되돌아가서 살고자 했던 그 신앙이 하나님께 축복을 받게 되었고,그리하여 소아시아에 있어서 에베소 교회는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오늘 히로시마 교회의 창립 기념 주일로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만, 다시 한번 올바르게 주님을 경외하는 진정한 신앙으로 되돌아올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힘에 대한 올바른 두려움을 가질 때에 비로소 주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인생도 주님께 맡겨 주님을 위해 사는 자에게 주님의 힘은 역사하실 것입니다.
2021年7月4日 主日礼拝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사도행전(使徒言行録) 2章 17節
〇讃 頌 讃頌歌 67(1, 4節)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聖書奉読 使徒言行録 19章 11 ~ 20節
〇説 教 「주님을 바로 경외하는 것으로부터(主を正しく畏れることから)」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288(1, 3節)
〇献 金
〇報 告
〇感謝祈祷
〇頌 栄 讃頌歌 1
〇祝 祷
【 2021年 7月 4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
「主を正しく畏れることから」 使徒言行録 19章 11~20節
神さまは、エフェソでのパウロの活動を祝福されました。11節に「神は、パウロの手を通して目覚ましい奇跡を行われた」(11節)とあります。「目覚ましい奇跡」というのは、病の癒やしのことですが、それは通常の癒やしではなくて、パウロが身につけていた手ぬぐいや前掛けを持って行って病人に当てると、病気が癒やされたのです。
勿論、パウロの手ぬぐいや前掛けそれ自体が不思議な力を持っていたと言う訳ではなく、神さまがそのような品物を用いてご自身の力を表したのです。このことが評判になり、エフェソの町中に広まり、その噂は小アジア全体へと広がって、多くの人びとがパウロが語る福音に関心を持ったわけですね。
このパウロの癒やしに関心を抱いたのは、信じる者たちだけ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それが祈祷師たちでした。13節です。「ところが、各地を巡り歩くユダヤ人の祈祷師たちの中にも、悪霊どもに取りつかれている人々に向かい、試みに、主イエスの名を唱えて、『パウロが宣べ伝えているイエスによって、お前たちに命じる』と言う者があった。」(13節)
当時、祈祷師たちの存在は当たり前でした。むしろ、人びとの生活には必要な人たちであったのです。病を癒やしたり、何かに迷ったら占ってもらうとか、人びとは彼らを頼りにしていたわけです。祈祷師たちは問題解決のために、様々な神々の中から、それにふさわしい名を選んで祈っておりました。それでお金を稼いでいたわけですが、祈祷師たちはパウロの評判を聞き、パウロが宣べ伝えているイエスと言う神の名を使ったのです。
それは自分のお金儲けのためにパウロの力を利用しようと、すなわち神さまの力を利用しようとしました。彼らにとって、神さまの力は自分の願いを叶えるものでしかなかったのです。それが逆に、大変な目に遭ってしまいます。悪霊たちは「イエスのことは知っている。パウロのこともよく知っている。だが、いったいお前たちは何者だ」(15節)と言って、悪霊は取り付いた男を祈祷師たちに飛びかからせて酷い目に合わせたのです。
私たちはこの祈祷師たちのような馬鹿げたことはしません。でも、よく考えたらまったくこういったことは私たちと関係がないわけではありません。もし、私たちも、神さまが私たちのために良いことをして下さるなら従いましょう、私たちの思い通りにして下さらなかったら従いません、と考えるならば、神の名、イエス・キリストの名を、自分の願いのために利用しているのです。そして、それはとても危険なことでもあるのです。この祈祷師たちのように、むしろ悪しきものに巻き込まれてしまう場合があるのです。人間の力ではないものをみだりに求める時、一時はことがうまくいったとしても、滅びにむかっていくのです。
皆さん、キリストの力は私たちの願望が実現するために働くのではなく、罪と死に運命づけられていた私たち自身を変え、神の子とするために働かれる力なのです。そして、この神の力は、イエスさまを主と拝み、その主に従って生きようとする人々の上に豊かに表されます。
神さまの力を自分の願望の実現のために用いようとしたり、自分の実力が足りないので、その力を少し借りたいなどと考えるような人の上には決して神さまの力は働くことがありません。実は、今日の出来事の本当の意味は、次に起こった人々の反応の上に現われたと考えることが出来るのです。
17節です。「このことがエフェソに住むユダヤ人やギリシア人すべてに知れ渡ったので、人々は皆恐れを抱き、主イエスの名は大いにあがめられるようになった。」(17節)
この出来事を通してまず、ユダヤ人やギリシャ人の間にイエスさまに対する正しい恐れが生じました。そしてまた、新たにキリストを信じる者たちが教会に与えられたのです。
神さまは恵みを与えて下さるお方です。私たちはその恵みを喜びます。しかし、それが本当に神さまの業だと知った時、恐れが生じるのです。ペトロがイエスさまに従って漁をしたら、とんでもない大漁でした。そのことを通してペトロは神さまへの恐れを抱き、また自分の罪を知りました。
今日の聖書箇所でも「信仰に入った大勢の人が来て、自分たちの悪行をはっきり告白した」(18節)とあります。ペトロがおびただしい魚を獲ったあと、イエスさまの足もとにひれふし、「主よ、わたしから離れてください。わたしは罪深い者なのです。」と言ったように、神さまの力を知った人々は、罪を告白せざるを得なくなるのです。神さまの方を向くということが回心、悔い改めですから、当然、そうなるわけです。神さまの方を向く時、私たちは、おのずと自らの罪を知らされるのです。
「自分たちの悪行をはっきり告白した」とありますが、ここに登場するのは未信者ではありません。既に信仰に入っていた人々の上に新たな変化が起こったことがここで語られているのです。主に対する正しい恐れを抱いた信者たちは「自分たちの悪行を告白した」のです。彼らは誰かに自分の犯している悪行を指摘されてここにしぶしぶやってきたのではなく、自ら進んで主の前に自分の過ちを告白したと言うのです。
その「悪行」、あるいは「過ち」とは何だったのでしょうか。その代表的な悪行がすぐ後に示されています。「また、魔術を行っていた多くの者も、その書物を持って来て、皆の前で焼き捨てた。その値段を見積もってみると、銀貨五万枚にもなった。」(19節)
キリストを信じていると言いながらも彼らの多くはなおたくさんの魔術に関する書物を隠し持っていたと言うのです。その価値は銀貨五万枚と言いますから大変な金額です。彼らはキリストを信じていると言いながら、スケワの七人の息子と同じように、キリストの力を自分の願望実現の道具として用いようと考えていたのです。しかも、彼らはキリストの名前が効き目がないような場合の備えとしてわざわざ他の神々の名が記された魔術の書物を隠し持っていたのです。つまり、ここで起こった不思議な出来事は多くの未信者を信仰に導いただけではなく、既にキリストを信じていると告白していた信者たちの心にも働きかけ、その心を変え、真の信仰に導くきっかけになったのです。
罪を知った時、それは心の中で反省をして終わるのではありません。生き方が変わっていくのです。クリスマスの物語に登場する東の方からやって来た占星術の学者たちも、イエスさまと出会い、イエスさまに黄金・没薬・乳香を捧げて、自分たちの国に帰っていきました。黄金・没薬・乳香は占星術に使う道具であったとも言われます。彼らは自分たちがこれまで生きて来た占星術の道具をイエスさまに捧げて帰っていったのです。つまり占星術をすることをやめて、新しい生活をするために帰っていったのです。
今日の聖書箇所でも、銀貨五万枚にも相当する魔術に使う書物を焼き捨てました。銀貨五万枚というのは、普通に人の140年分の賃金にあたります。それを焼き捨てたのです。漁師だったペトロが舟を置いてイエスさまに従ったように、イエスさまに罪の告白をした人々はそれまでの生き方を捨ててイエスさまに従いました。
このように、エフェソの人々は、悔い改め、主の言葉に生きるようになりました。エフェソの人びとの悔い改めと主の御言葉に立ち帰り生きようとした、その信仰が神さまに祝福され、小アジアにおいてエフェソ教会は、大きな働きをすることが出来たのです。
私たちは、今日、広島教会の創立記念主日として礼拝を守っておりますが、改めて、正しく主を恐れる真の信仰に立ち帰る必要があります。神さまの力に対する正しい恐れは、その主に対する確かな信頼を私たちに与えるのです。そして、この確かな信頼を持って、自分も人生を主に委ね、主のために生きようとする者に主の力は働かれるのです。
【2021년 7월 4일 주일예배(요약판)】
“주님을 바로 경외하는 것으로부터” 사도행전 19장 11~20절
하나님께서는 에베소에서의 바울의 활동을 축복하셨습니다. 11절에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11절) 라고 쓰여 있습니다. “놀라운 능력”이란 병을 고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치료를 하는 일반적인 보통의 방법으로 병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바울이 몸에 걸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 그 자체가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러한 것들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힘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러한 소문은 에베소 전체는 물론이고 아시아 전역으로까지 퍼지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말하는 복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 바울의 고침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마술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3절입니다.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13절)
당시 마술하던 사람들의 존재는 당연한 예사였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사람들의 생활에 필요한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병을 고칠때라던가 뭔가 망설여지면 점을 보거나 하면서 사람들은 그들을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마술을 하던 어떤 유대인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신들 가운데 거기에 알맞는 이름을 골라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만, 그들은 바울의 평판을 듣고 바울이 말하는 예수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돈벌이를 위해서 바울의 힘 즉 하나님의 힘을 이용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힘은 자기들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역으로 봉변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스게와의 일곱아들도 이일을 했는데 그때 악귀는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15절) 라고 하면서 악귀들린 사람이 그 사람들에게 뛰어올라 제압하여 때리고 옷을 찢어 다치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마술을 하던 사람들과 같은 어리석은 짓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이런 일이 우리와 전혀 상관없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쪽으로 해 주신다면 따르겠다, 우리 뜻대로 해 주지 않으면 안 따르겠다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자기 소원을 위하여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위험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 마술하는 사람들처럼 오히려 악한 것에 말려들게 되어 버릴 경우도 있습니다. 인간의 힘이 아닌 것을 함부로 구할 때, 일시적으로는 좋을 지 몰라도 결국에는 멸망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힘은 우리의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죄와 죽음으로 운명지어졌던 우리 자신을 바꾸어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 위해 일하시는 힘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힘은 예수님을 주님으로서 경배하여 그 주님을 따라가려고 하는 사람들 위에 풍요롭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힘을 자신의 소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쓰려고 하거나 자기의 실력이 부족하기에 그 힘을 빌리려고 하는 사람 위에 결코 하나님의 힘은 작용하지 않습니다.
사실 오늘 이야기의 진정한 의미는 다음에 일어날 사람들의 반응 위에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17절입니다.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17절)
이 사건을 통해 우선 유대인과 헬라인들 사이에 예수에 대한 올바른 경외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또 새롭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교회에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임을 알았을 때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 고기잡이를 했을 때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것을 통해 베드로는 하나님께 경외심을 가졌고, 또 자신의 죄를 깨달았습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에도 “믿는 사람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18절) 라고 쓰여 있습니다. 베드로가 엄청난 물고기를 잡은 후,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5:8) 라고 말한 것 같이 하나님의 힘을 알게된 사람들은 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향을 향한다는 것이 회심, 회개이니까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향을 향할 때,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죄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라고 쓰여 있습니다만,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안 믿는 자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이미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 위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여기서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바른 경외를 하는 믿는 자들이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린 것입니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자기가 범하는 악행을 지적당하여 여기에 마지못해 나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님 앞에 자기의 잘못을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그 “악행” 또는 “잘못”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 대표적인 악행이 바로 그 뒤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사람들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19절)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마술에 관한 책을 숨겨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가치는 은 오만이나 되니까 엄청난 액수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하면서도 스게와의 일겁 아들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힘을 자기의 소망 실현의 도구로서 쓰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이 효과가 없을 때의 대비로서 마술 책을 숨겨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여기서 일어난 신기한 일은 많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신앙으로 인도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고백한 사람들의 마음에도 작용하여 그 마음을 바꾸고 참 신앙으로 인도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죄를 알았을 때, 그것은 마음 속으로만 반성해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살아가는 태도가 바뀌어 가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이야기에 등장하는 동방박사들도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치고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박사들이 점성술에 쓰는 도구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점성술의 도구를 예수님께 바치고 돌아간 것입니다. 즉 점성술을 그만두고 새 생활을 하기 위하여 돌아간 것입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에서도 은 오만닢어치나 되는 마술에 쓰이는 책을 불살랐습니다. 은 오만이라는 액수는 보통 사람들의 140년분의 임금에 상당하는 금액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불사른 것입니다. 어부였던 베드로가 배를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라간 것 처럼 예수님께 죄를 고백한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생활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이렇게 에베소 사람들은 회개하고 주님의 말씀 안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의 회개와 주님의 말씀에 되돌아가서 살고자 했던 그 신앙이 하나님께 축복을 받게 되었고,그리하여 소아시아에 있어서 에베소 교회는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오늘 히로시마 교회의 창립 기념 주일로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만, 다시 한번 올바르게 주님을 경외하는 진정한 신앙으로 되돌아올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힘에 대한 올바른 두려움을 가질 때에 비로소 주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인생도 주님께 맡겨 주님을 위해 사는 자에게 주님의 힘은 역사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