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말씀은 설교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고넬료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고넬료는 로마군 이탈리아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백부장이라는 신분의 사람들은 당시의 유대교나 기독교와 아주 깊은 관계가 있던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도 그들중에 유대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백부장이라는 계급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원래는 유대를 지배하는 측의 사람들이기에 유대의 종교나 풍습과는 관계없고 오히려 그것을 거절하는 편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입장상 유대인들과 직접 대하는 기회가 많기도 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듯이 산상 보훈을 끝내고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께 부하의 고침을 받은 맨 처음의 이방인도 백부장이었습니다.(마 8장) 그리고 저 십자가 위에서 죽어가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27:54) 라고 고백한 것도 백부장이었습니다. 그 입장과 신분 때문에 유대인들과 직접 접하는 일도 많았고 그 때문에 성서의 하나님께 마음이 끌리는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고넬료도 이탈리아 군대를 지휘하는 백부장으로서 가족 모두가 유대의 하나님을 믿고, 할례는 받지 않았다해도 구제와 기도를 잊지는 않았습니다. 고넬료가 환상 중에 하나님의 사자를 본 오후 3시라는 시간도 경건한 유대인이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에게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고 명령받았습니다만, 그때 고넬료가 베드로를 알고 있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환상 중에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따라 베드로를 청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베드로는 어떤지 보자면 베드로도 역시 마찬가지로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내용은 큰 보자기 같은 그릇에 여러 가지 먹을 것이 들어 있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잡아 먹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것을 보고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14절) 라고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율법에 규정된 먹으면 안되는 것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깨끗하지 않은 것은 먹지 말라고 배웠고, 당연히 그것을 지켜 왔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며 당연히 그것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도 갑자기 그것을 먹으라는 환상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에게 있어서 아주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간단히 “예 그렇습니까?”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환상 중에 잡아 먹으라는 목소리에 대해서 세 번이나 거부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하늘로부터의 목소리를 듣고도 세 번이나 거부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은 자기의 사는 방법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환상을 보게됩니다만, 이것은 실로 단순히 먹을 것에 관한게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것이 유대인 뿐이며 다른 국민은 전혀 하나님의 은혜와 특권을 받을 수 없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엄격한 유대인이라면 이방인과는 물론 전혀 관계하지도 않고 또 율법을 지키지 않는 유대인과 조차도 관계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손님으로 맞는 일도 없을뿐더러 자기가 그 사람의 손님이 되는 일도 없었습니다.
이미 빌립에 의한 이방인 전도는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극복해야 하는 장벽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문에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을 완전히 극복하게 하기 위해서,아니 유대인이 이방인에 대해서 품고 있는 편견을 제거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인 베드로를 일부러 청하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 장벽을 극복해야 하는 것은 이방인인 고넬료가 아니라 베드로를 비롯한 교회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 고넬료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33절에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라고 하는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는 실은 아직 저항이 뿌리 깊게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세계에 전파하기 위해서 베드로의 낡은 사고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으셨고 그러기 위해 모든 준비를 다 해 주신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눈길을 멈추어야 하는 것은 고넬료와 같이 아직 크리스천이 아니지만 성경의 하나님을 믿고, 거기에 계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려고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일으켜 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며 더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인해 그 사람들을 통해 부름을 받는 일이 있을 수도 있고 또 그것을 기대하셔도 좋다는 것입니다. 이쪽이 주저하며 망설이고 있는 동안에 오히려 저쪽에서 “성경의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더 알고 싶어요.”라고 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주님의 자비 외에 그 무엇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가 고넬료 일가와 친구들에게 말한 복음의 말씀과 그 결과에 대해서는 다음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만, 그 전에 고넬료가 일가족을 총동원해서 아니 가족뿐만 아니라 친족 모두랑 친한 친구들까지 불러서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설교자를 청한다는 것은 참으로 굉장한 일이며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곳에서야말로 구원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고넬료 일가는 성경의 하나님을 믿고 종교적인 선행에 힘쓰고 있었습니다만, 단지 그것뿐이라면 불충분했을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부분이 결여되어 있었기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그 가정의 중심에 맞아들이기 전에는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고넬료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올 필요도 없었습니다. 기독교에 호의적이라거나 성경의 말씀은 굉장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과 만났던 사람들로부터 직접 예수님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때까지는 그리하여 자기 자신이 예수님과 만나기 전에는 그곳에 진정한 만족도 평안도 없습니다.
고넬료 일가는 드디어 참된 만족과 평안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그러한 일들이 더욱 더 풍부하게 일어나기를, 주님께서 그런 일들을 일어나게 해 주시고 또한 성취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2020年 9月 27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
「コルネリウス物語①」使徒言行録10章1~33節
今日の聖書箇所ですが、説教題が示すとおり、物語の中心人物はコルネリウスという人です。コルネリウスは、ローマ軍イタリア隊の百人隊長でありました。百人隊長という身分の人たちは、ユダヤ教やキリスト教ととても深い関係があるようです。実際に、ユダヤ教に帰依する人たちが多かったようなんですね。それは百人隊長という階級に関係しているのかも知れません。本来であればユダヤを支配する側の人間ですから、ユダヤの宗教、風習とは関係がない、むしろそれを拒絶する側にいる人間であるわけですが、それでも立場上、ユダヤ人と直接接する機会が多いわけです。
マタイ福音書において、山上の説教を終えて山から降りて来られたイエスさまに、部下を癒してもらった最初の異邦人が百人隊長でしたし、あの十字架の上で死に行くイエスさまを見つめながら、「本当に、この人は神の子だった」(マタイ27:54)と告白したのも百人隊長でありました。その立場と身分の故に、ユダヤ人と直接接することも多く、そのため聖書の神さまに心惹かれる人も多かったのでしょう。
どうやら、コルネリウスも、イタリア隊を率いる百人隊長として、家族を挙げてユダヤの神を信じ、割礼こそ受けてはいなかったものの、施しと祈りを忘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コルネリウスが幻の中で神の天使を見た午後三時という時間も、敬虔なユダヤ人が祈りを捧げる時間なのです。彼は天使から、ペトロと呼ばれるシモンを招きなさい、と命じられますけれども、コルネリウスがペトロのことを知っていたかどうかは定かではありません。しかし、コルネリウスは幻の中で聞いた神さまの御言葉にすぐに従い、ペトロを招こうとしました。
それに対して、ペトロはどうかと言いますと、ペトロも同じように幻を見ます。その内容は、大きな布の入れ物の中に、色んな食べ物と言いますか、食材が入っていて、神さまがそれを屠って食べよと言われるわけです。でも、ペトロはそれを見て、「主よ、とんでもないことです」(14節)と拒絶します。なぜなら、その中には、律法に規程されている食べてはいけない食材が入っていたからです。
ユダヤ人たちは幼い時から汚れたものを食べてはいけないと教えられてきて、当然、それを当たり前に守ってきました。それが神さまからの命令であり、それを守ることが神さまを信じることであると思って生きてきました。
それなのに、突然、それを食べろと幻で告げられてしまいます。それはペトロにとってはとてもショックなことだったに違いありません。そう簡単に、「はい、そうですか」と言えること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
ペトロは、幻の中で、屠って食べなさいという声に対して3度も拒否したと記されています。天からの声に対しても3度拒否する、というのは、それほど人は自分の生き方を変えることがいかに難しいかをよく表しています。
ペトロは3度も幻を見せられるわけですが、これは実は食べ物のことではなく、人間的なことだったのです。ユダヤ人たちは、神さまが救われるのはユダヤ人だけであり、他の国民は全く神さまの恵みと特権には与れないと信じておりました。そして、徹底的に厳格なユダヤ人は、異邦人と全く接触しないし、律法を守らないユダヤ人とも接触しませんでした。律法を守らない人を客に迎えることも、自分がその人の客になることもなかったそうです。
もうすでに、フィリポによって異邦人伝道が始まっておりました。しかし、そこには乗り越えなければならない壁があったのです。神さまはそのために、ユダヤ人と異邦人の壁を完全に乗り越えさせるために、いやユダヤ人が異邦人に対して抱いている偏見を取り除くために、イエスさまは聖霊によって、エルサレム教会の指導者であるペトロをわざわざ招くようにと導かれたのです。
そして、この物語で意義深いことは、その壁を乗り越えねばならなかったのは、異邦人であるコルネリウスの方ではなくて、ペトロを初めとする教会の人間の方であったということなのです。
異邦人のコルネリウスは家族や友人共々用意が出来ておりました。33節に「今わたしたちは皆、主があなたにお命じになったことを残らず聞こうとして、神の前にいるのです」とある通りです。
しかし、ペトロには、実はまだ抵抗が根深く残っていたのです。イエスさまは、福音を全世界に告げ知らせるために、ペトロの古い考え方を変える必要があり、そのために何から何までお膳立てを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
何よりも先ず、私たちが目を留めなければならないのは、コルネリウスのように未だクリスチャンではないにしても、聖書の神さまを信じ、そこにある神さまの御心通りに歩もうとする人々をちゃんと起こしてくださ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そういう人たちが意外に多いということを、私たちは神さまの恵みとして、もっと心に留め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います。しかも、神さまの導きによって、この人たちから招きを受けるということがあり得るし、そのことを期待して良いということです。こちらが臆病になって、二の足を踏んでいるところ、向こうの方から、是非聖書の話を聞かせてください、イエス・キリストのことをもっとちゃんと知りたいのです、と言ってきてくれる。これは本当に主の憐れみ以外の何ものでもないと思います。
ペトロがコルネリウス一家とその友人たちに語った福音の言葉とその結果については、来週お話ししたいと思いますが、それ以前に、コルネリウスが家族総出で、いや家族ばかりではない、親族一同や親しい友人たちまで招いて、一緒に神さまの御言葉を聞こうと、説教者を招いたということが、本当に素晴らしく、感謝なことだと思うのです。こういうところで、救いは起こるんだと思います。
コルネリウス一家は、聖書の神さまを信じ、宗教的な良き行いに励んでいましたけれども、それだけでは不十分でありました。一番大切なものが欠けていたのです。それがイエスさまでした。イエスさまを家庭の中心にお迎えするまでは、家庭はまことの幸いを得ることはありません。そうでなければ、コルネリウスのところに神の天使が来る必要もありませんでした。キリスト教に好意的であるとか、聖書の言葉は素晴らしいと思うというだけでは、救いに入れないのです。イエスさまと出会った人たちから直にイエスさまのことを聞くまでは、そうして自分自身がイエスさまと出会うまでは、そこに真の満足も安らぎもありません。コルネリウス一家は、ついにその満足と安らぎとを得たのです。
私たちの教会の中でも、そのことがさらに豊かに起こることを、主がそのことを起こして、成就してくださることを、心から祈り願っております。
【2020년 9월 27일 주일예배(요약판)】
“고넬료 이야기 ①” 사도행전 10장 1~33절
오늘의 성경말씀은 설교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고넬료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고넬료는 로마군 이탈리아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백부장이라는 신분의 사람들은 당시의 유대교나 기독교와 아주 깊은 관계가 있던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도 그들중에 유대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백부장이라는 계급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원래는 유대를 지배하는 측의 사람들이기에 유대의 종교나 풍습과는 관계없고 오히려 그것을 거절하는 편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입장상 유대인들과 직접 대하는 기회가 많기도 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듯이 산상 보훈을 끝내고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께 부하의 고침을 받은 맨 처음의 이방인도 백부장이었습니다.(마 8장) 그리고 저 십자가 위에서 죽어가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27:54) 라고 고백한 것도 백부장이었습니다. 그 입장과 신분 때문에 유대인들과 직접 접하는 일도 많았고 그 때문에 성서의 하나님께 마음이 끌리는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고넬료도 이탈리아 군대를 지휘하는 백부장으로서 가족 모두가 유대의 하나님을 믿고, 할례는 받지 않았다해도 구제와 기도를 잊지는 않았습니다. 고넬료가 환상 중에 하나님의 사자를 본 오후 3시라는 시간도 경건한 유대인이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에게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고 명령받았습니다만, 그때 고넬료가 베드로를 알고 있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환상 중에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따라 베드로를 청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베드로는 어떤지 보자면 베드로도 역시 마찬가지로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내용은 큰 보자기 같은 그릇에 여러 가지 먹을 것이 들어 있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잡아 먹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것을 보고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14절) 라고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율법에 규정된 먹으면 안되는 것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깨끗하지 않은 것은 먹지 말라고 배웠고, 당연히 그것을 지켜 왔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며 당연히 그것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도 갑자기 그것을 먹으라는 환상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에게 있어서 아주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간단히 “예 그렇습니까?”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환상 중에 잡아 먹으라는 목소리에 대해서 세 번이나 거부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하늘로부터의 목소리를 듣고도 세 번이나 거부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은 자기의 사는 방법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환상을 보게됩니다만, 이것은 실로 단순히 먹을 것에 관한게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것이 유대인 뿐이며 다른 국민은 전혀 하나님의 은혜와 특권을 받을 수 없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엄격한 유대인이라면 이방인과는 물론 전혀 관계하지도 않고 또 율법을 지키지 않는 유대인과 조차도 관계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손님으로 맞는 일도 없을뿐더러 자기가 그 사람의 손님이 되는 일도 없었습니다.
이미 빌립에 의한 이방인 전도는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극복해야 하는 장벽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문에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을 완전히 극복하게 하기 위해서,아니 유대인이 이방인에 대해서 품고 있는 편견을 제거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인 베드로를 일부러 청하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 장벽을 극복해야 하는 것은 이방인인 고넬료가 아니라 베드로를 비롯한 교회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 고넬료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33절에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라고 하는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는 실은 아직 저항이 뿌리 깊게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세계에 전파하기 위해서 베드로의 낡은 사고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으셨고 그러기 위해 모든 준비를 다 해 주신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눈길을 멈추어야 하는 것은 고넬료와 같이 아직 크리스천이 아니지만 성경의 하나님을 믿고, 거기에 계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려고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일으켜 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며 더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인해 그 사람들을 통해 부름을 받는 일이 있을 수도 있고 또 그것을 기대하셔도 좋다는 것입니다. 이쪽이 주저하며 망설이고 있는 동안에 오히려 저쪽에서 “성경의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더 알고 싶어요.”라고 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주님의 자비 외에 그 무엇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가 고넬료 일가와 친구들에게 말한 복음의 말씀과 그 결과에 대해서는 다음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만, 그 전에 고넬료가 일가족을 총동원해서 아니 가족뿐만 아니라 친족 모두랑 친한 친구들까지 불러서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설교자를 청한다는 것은 참으로 굉장한 일이며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곳에서야말로 구원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고넬료 일가는 성경의 하나님을 믿고 종교적인 선행에 힘쓰고 있었습니다만, 단지 그것뿐이라면 불충분했을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부분이 결여되어 있었기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그 가정의 중심에 맞아들이기 전에는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고넬료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올 필요도 없었습니다. 기독교에 호의적이라거나 성경의 말씀은 굉장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과 만났던 사람들로부터 직접 예수님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때까지는 그리하여 자기 자신이 예수님과 만나기 전에는 그곳에 진정한 만족도 평안도 없습니다.
고넬료 일가는 드디어 참된 만족과 평안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그러한 일들이 더욱 더 풍부하게 일어나기를, 주님께서 그런 일들을 일어나게 해 주시고 또한 성취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