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 왕은 헤롯 왕의 할아버지인 헤롯 대왕이 로마 황제에게 바치기 위해 건설한 도시 가이사에서 그 때의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거기에 국외로부터는 두로와 시돈 사람들도 와 있었습니다. 이 지방 사람들은 헤롯이 통치하는 이스라엘에서 식량을 얻고 있었는데, 헤롯 왕은 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어째서 그런지는 잘 모르지만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헤롯 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잔치에 참가하여 헤롯 왕을 치켜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헤롯 왕이 백성 앞에서 연설을 하자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나서서 큰 소리로 헤롯 왕을 칭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 그러자, 주의 사자가 헤롯 왕을 치셨다고 성경에는 쓰여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벌레에 먹혀 죽으니라."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헤롯 왕은 죽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요세푸스라는 당시의 유대인 역사가가 기록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에 의거하면, 이 로마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는 잔치의 이틀째에 헤롯 왕은 전면 은빛이 빛나는 왕복을 입고 새벽 빛 가운데 단상에 앉았습니다. 왕복은 아침 햇빛에 찬연히 빛났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관객석에서 왕에게 아첨하는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지금까지는 사람으로서 우러렀으나 이제부터는 신으로서 우러르겠습니다.”‥‥ 왕을 신으로서 우러르는 소리가 있었고 왕은 그것을 말리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왕은 복부에 심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왕은 왕궁에 옮겨졌습니다만 다섯날 동안 칠전팔도의 고통 끝에 절명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헤롯은 이렇게 죽었습니다. 교회 사람들은 “헤롯이 죽도록 ”이라든지 “헤롯에게 저주가 닥치도록” 이라든지의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 사람들의 기도의 결과인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헤롯은 이런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성경은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함으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라고 써 있습니다. 그리고 24절에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고 더하여 갔던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영광은 하나님 것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하나님만을 우러르고 칭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헤롯 왕을 신으로서 우러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헤롯은 그것을 말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기가 대신하여 신이 되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과 대칭적인 것이 그리스도의 사도들입니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10장에서 로마의 백부장인 고넬료가 기독교 성도가 되었다는 것을 읽었습니다만, 고넬료의 집에 사도 베드로가 찾아왔을 때 고넬료는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일어나거라 나도 사람이라”(10:26) 라고 말해서 고넬료를 일으켰습니다. 헤롯은 그것과 대칭적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 생활이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어떤 목사님은 “좋은 설교였습니다” 라는 말을 들으면 “아니, 성경이 굉장한 것입니다.”라고 말한답니다. 그러한 삶의 자세가 주님께 축복받고,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는 삶의 태도는 “자기가” “자기가”로 본인이 늘 우선이 됩니다. 자기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을 바라며 살게 됩니다. 거기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늘 불평불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의 방식을 알면 평안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의 피겨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인 한국의 김연아 선수, 그녀는 2008년에 어머니와 같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올림픽에서는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가슴에 십자가 성호를 긋고 있었던 모습을 기억하시는 분도 많이 계실 겁니다. 그녀는 아사다마오 선수를 제치고 우승을 했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얼마나 많이 긴장이 되었을까요? 그러나 김연아 선수에게는 전혀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 김연아 선수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누가 금메달을 가지게 될지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설령 금메달을 얻지 못해도 전 그다지 실망은 하지 않을 겁니다.”
구약성서 욥기에서 욥은 엄격한 시련을 만났습니다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나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께 맡긴다. 여기에 평안이 있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의 성경말씀에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불가사의한 것들이 쓰여 있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인간이 구원받는 것, 실은 그 자체도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냥 어딘지 모르게 하나님께서는 나를 구원해 주시며, 막연히 그냥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해 주시려니, 어쩐지 그냥 하나님께서는 나를 용서해 주시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일까요? 물론 정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단,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행동해 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전인류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짊어지워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신 것은 우리 중 그 어느 한 사람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 그런 기도는 그 때까지 몇번이나 반복해서 기도해 왔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일들을 하나님께서는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장 이루어 지기를 원하는 기도에 벌써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생각한 그 이상의 일이 일어나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아멘.
【 2020年 11月 1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
「栄光は誰のもの」 使徒言行録 12章 20~25
今日の聖書箇所は、ヘロデ王が急死するという話しです。
ヘロデ王は、ヘロデ王の祖父であるヘロデ大王がローマ皇帝に献げるために建設した町カイサリアで、時のローマ皇帝クラウディウスの誕生日を祝う祝賀会を開催いたしました。そこに、国外から、すなわちティルスとシドンの住民も来ていました。この地方の住民は、ヘロデ王が統治するイスラエルから食糧を得ていたようですが、ヘロデ王はこのティルスとシドンの住民に腹を立てていたのです。なぜ、そうなのかはよく分かりませんが、ティルスとシドンの住民は、ヘロデ王のご機嫌をとるために、祝賀会に参加し、ヘロデ王を持ち上げようとしたのです。
ヘロデ王が民衆の前で演説をすると、ティルスとシドンの住民が口火を切ったのでしょう、大声でヘロデ王をほめたたえ始めました。「神の声だ。人間の声ではない!」‥‥すると、たちまち主の天使がヘロデ王を撃ち倒したと、聖書には記されています。具体的には、「蛆(うじ)に食い荒らされて息絶えた」と書かれています。こうしてヘロデ王は死にました。
これについて、ヨセフスという当時のユダヤ人歴史家が記録したものがあります。それによれば、このローマ皇帝の誕生日を祝う祝賀会の二日目に、ヘロデ王は全面銀色に輝く衣をまとい、夜明けの光の中で席に着きました。王の衣装は朝日にさんぜんと輝いたそうです。すると観客席から、王にへつらう者たちの声が上がりました。「私たちに恵みを与えて下さい。これまでは人間として崇めましたが、今からは神さまとして崇めます」‥‥王を神として崇める声があって、王はそれを止めませんでした。すると突如、王は腹部に激しい痛みを覚えました。王は王宮に運ばれましたが、五日間、七転八倒の苦しみのあげく絶命しました。
結果的に、ヘロデはこのように死にました。教会の人たちは「ヘロデが死にますように」とか、「ヘロデに呪いが降りかかりますように」などとは祈っていません。教会の人たちの祈りの結果かどうかは分かりませんが、ヘロデはこのような結末を迎えました。このことについて、聖書は、「主の天使が撃ち倒した。神に栄光を帰さなかったからである」と記しています。そして24節にありますように、「神の言葉はますます栄え、広がって行った」のです。
聖書では、栄光は神さまのものであることが記されています。言い換えれば、神さまだけが崇められ、ほめたたえられるべき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なのに、人々はヘロデ王を神として崇めようとしました。そして、ヘロデはそれを止めなかったのです。自分が神さまにとって変わろうとしたのです。
これと対称的なのが、キリストの使徒たちです。例えば10章で、ローマの軍人であるコルネリウスがキリスト信徒となったことを学びましたが、コルネリウスの家に使徒ペトロが来た時、コルネリウスはペトロの足もとにひれ伏して彼を拝みました。するとペトロは、「お立ち下さい。わたしもただの人間です」と言って、コルネリウスを起こしました。ヘロデは、それと対称的です。
キリスト者の信仰生活とは、神さまに栄光を帰す生き方であると言って良いでしょう。ある牧師任は、「良いお話でした」と言われると、「いや、聖書がすばらしいのです」と言うのだとおっしゃっていました。そのような生き方が主によって祝福され、喜びがあるのです。
神さまの栄光を求めない生き方は、「自分が」「自分が」となります。自分が良い評価をされ、自分の思い通りになることを願って生きることになります。そこには平安がありません。いつも不平不満があります。しかし、神さまに栄光をお返しする生き方を知るならば、平安が与えられるのです。
2010年バンクーバーオリンピックのフィギュアスケート金メダリストである韓国のキムヨナ選手。彼女は、2008年にお母さんと一緒に洗礼を受けました。オリンピックでは、すべる前に胸の前で十字を切っていたのをご記憶の方も多いでしょう。彼女は浅田真央選手を破って優勝しました。すべる前はどんなに緊張することでしょう。しかしキムヨナ選手には、全くそのようなものが感じられませんでした。そのキムヨナ選手は、こう言っていたそうです。「準備は万全です。誰が金メダルを取るかは、神さまが決めるものです。たとえ金メダルを取れなくても、そんなに失望はしません」。
旧約聖書のヨブ記で、ヨブはひどい試練に遭遇しましたが、彼はこう言いました。「主は与え、主は奪う。主の御名はほめたたえられよ。」(ヨブ記1:21)
主なる神さまをほめたたえ、主に栄光を帰し、主にゆだねる。ここに平安があることを聖書は私たちに教えているのです。
ところで皆さん、今日の聖書箇所にも不思議なことが書かれています。信じられないと思うようなことが書かれています。しかしよく考えてみていただきたいと思うのです。私たち人間が救われること、そのこと自体も信じられないようなことです。私たちは何となく神さまが自分を救ってくださるのではないか、何となく神さまが自分を愛してくださるのではないか、何となく神さまが自分を赦してくださるのではないかと思っているところがあります。それは本当でしょうか。もちろん、本当です。神さまは私たちを救い、愛して、赦してくださいます。
ただ、神さまはそのことを成し遂げるために、行動してくださいました。ご自分の独り子、イエス・キリストを私たちのところにお遣わしくださいました。全人類の罪をイエス・キリストに負わせ、十字架にお架けになったのです。それゆえに私たちは罪を赦していただきました。それほどまでに神さまが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います。
神さまが行ってくださったこのことは、私たちの誰一人、想像すらしなかったことです。神さま、私たちを救ってください、そういう祈りはそれまでに何度も繰り返し、献げられ続けてきましたが、神さまはその祈りに応えてくださったのです。私たちが思っている以上のことを、神さまはしてくださいました。神さまは私たちが最も叶えて欲しい祈りに、すでに応えていてくださっているのです。それも私たちが思った以上のことを、起こ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アーメン。
【2020년 11월 1일 주일예배(요약판)】
“영광은 누구 것이냐” 사도행전 12장 20~25절
오늘의 성경말씀은 헤롯 왕이 급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헤롯 왕은 헤롯 왕의 할아버지인 헤롯 대왕이 로마 황제에게 바치기 위해 건설한 도시 가이사에서 그 때의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거기에 국외로부터는 두로와 시돈 사람들도 와 있었습니다. 이 지방 사람들은 헤롯이 통치하는 이스라엘에서 식량을 얻고 있었는데, 헤롯 왕은 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어째서 그런지는 잘 모르지만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헤롯 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잔치에 참가하여 헤롯 왕을 치켜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헤롯 왕이 백성 앞에서 연설을 하자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나서서 큰 소리로 헤롯 왕을 칭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 그러자, 주의 사자가 헤롯 왕을 치셨다고 성경에는 쓰여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벌레에 먹혀 죽으니라."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헤롯 왕은 죽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요세푸스라는 당시의 유대인 역사가가 기록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에 의거하면, 이 로마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는 잔치의 이틀째에 헤롯 왕은 전면 은빛이 빛나는 왕복을 입고 새벽 빛 가운데 단상에 앉았습니다. 왕복은 아침 햇빛에 찬연히 빛났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관객석에서 왕에게 아첨하는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지금까지는 사람으로서 우러렀으나 이제부터는 신으로서 우러르겠습니다.”‥‥ 왕을 신으로서 우러르는 소리가 있었고 왕은 그것을 말리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왕은 복부에 심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왕은 왕궁에 옮겨졌습니다만 다섯날 동안 칠전팔도의 고통 끝에 절명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헤롯은 이렇게 죽었습니다. 교회 사람들은 “헤롯이 죽도록 ”이라든지 “헤롯에게 저주가 닥치도록” 이라든지의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 사람들의 기도의 결과인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헤롯은 이런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성경은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함으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라고 써 있습니다. 그리고 24절에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고 더하여 갔던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영광은 하나님 것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하나님만을 우러르고 칭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헤롯 왕을 신으로서 우러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헤롯은 그것을 말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기가 대신하여 신이 되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과 대칭적인 것이 그리스도의 사도들입니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10장에서 로마의 백부장인 고넬료가 기독교 성도가 되었다는 것을 읽었습니다만, 고넬료의 집에 사도 베드로가 찾아왔을 때 고넬료는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일어나거라 나도 사람이라”(10:26) 라고 말해서 고넬료를 일으켰습니다. 헤롯은 그것과 대칭적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 생활이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어떤 목사님은 “좋은 설교였습니다” 라는 말을 들으면 “아니, 성경이 굉장한 것입니다.”라고 말한답니다. 그러한 삶의 자세가 주님께 축복받고,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는 삶의 태도는 “자기가” “자기가”로 본인이 늘 우선이 됩니다. 자기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을 바라며 살게 됩니다. 거기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늘 불평불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의 방식을 알면 평안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의 피겨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인 한국의 김연아 선수, 그녀는 2008년에 어머니와 같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올림픽에서는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가슴에 십자가 성호를 긋고 있었던 모습을 기억하시는 분도 많이 계실 겁니다. 그녀는 아사다마오 선수를 제치고 우승을 했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얼마나 많이 긴장이 되었을까요? 그러나 김연아 선수에게는 전혀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 김연아 선수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누가 금메달을 가지게 될지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설령 금메달을 얻지 못해도 전 그다지 실망은 하지 않을 겁니다.”
구약성서 욥기에서 욥은 엄격한 시련을 만났습니다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나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께 맡긴다. 여기에 평안이 있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의 성경말씀에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불가사의한 것들이 쓰여 있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인간이 구원받는 것, 실은 그 자체도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냥 어딘지 모르게 하나님께서는 나를 구원해 주시며, 막연히 그냥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해 주시려니, 어쩐지 그냥 하나님께서는 나를 용서해 주시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일까요? 물론 정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단,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행동해 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전인류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짊어지워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신 것은 우리 중 그 어느 한 사람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 그런 기도는 그 때까지 몇번이나 반복해서 기도해 왔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일들을 하나님께서는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장 이루어 지기를 원하는 기도에 벌써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생각한 그 이상의 일이 일어나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아멘.